단군세기의 저자, 이암李嵒
타나토노트
2014-07-29 00:47:21 │ 조회 1232

<단군세기>의 저자, 이암李嵒 

 

 

  

 행촌 이암(1297~1364)

 

[고려사] <열전>에 올랐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 행촌 이암은 고려 25대 충렬왕 때 고성 이씨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행촌이란 호는 그가 유배되었던 강화도의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뛰어난 학자와 관리가 배출된 고성 이씨 집안의 9세손이다. 증조부 이진李瑨은 고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학사를 역임하였으며 조부 이존비李尊庇 역시 과거에 급제하여 文翰학 및 進賢館 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부친 이우李瑀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으나 문음제를 통해 경상 김해와 강원도 회양의 부사를 지냈다.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에 의하면, 이존비는 환국과 배달의 역사에 대해 근본을 통하고 환단사상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가진 대학자였다. 할아버지 이존비의 정신을 그대로 전수받은 후손이 바로 행촌 이암이다. 이암은 10세 때 강화도 마리산의 보제사에 들어가 3년 동안 유가의 경전과 우리 대사에 대한 기록을 탐독하였다.  

 

부모님이 그리울 때면 마리산 꼭대기의 참성단에 올라, 수천 년 전 그곳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단군왕검의 역사의식을 가슴에 새겼다. 그 때 지은 시를 보면, 십대의 어린 나이에 나라의 평안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염원을 세우고 있다. 

  

17세(1313년)에 문과에 급제한 이암은, 고려가 원나라의 내정 간섭을 받던 시기의 여덟 국왕 가운데 여섯 분을 모시면서 격동의 삶 살았다. 충선왕 때 나라의 관인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시작하여 두 차례 유배를 당하고, 왕의 책봉을 위해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수년 동안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62세(1358년) 때 공민왕의 부름에 환도하여 오늘날의 국무총리 격인 수문하시중의 자리에 올랐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과감한 개혁정치를 단행한 개혁군주이다. 그러한 공민왕의 곁에 이암이 있었다. 문하시중이 된 그 다음 해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서북면西北面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가 되어 적군 4만 명을 격퇴시켰고, 1년 후 홍건적의 2차 침입 때는 경북 안동으로 피난가는 공민왕을 호종하였다. 

   

당시 고려 조정은 임금 앞에서 자신을 ‘臣’ 이라고 말하지 않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친원파의 간신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암은 청렴결백하여 사사로이 재물과 권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홍건적을 격퇴하고 왕을 호종한 공로로 좌정승에 제수되기까지(1361년) 했지만, 공민왕의 부름에 응한 지 5년 만에(1363년) 사퇴하고 야인이 되었다.

  

행촌에게는 고려와 조선의 여느 정치가, 학자와는 남다른 면모가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학 서적만이 아니라 동서 문화의 원류인 신교 사서를 탐독하여 신교의 삼신문화에 정통하였다. 첫 유배지였던 강화도에서 3년을 보낼 때도 우주의 이치와 천문, 풍수, 지리 등을 연구하는 독서를 많이 

하였다. 그리고 유배에서 풀려나(1335년) 천보산 태소암에서 1년간 머물 때, 소전素佺거사로부터 인류 문명의 황금시절이었던 환단(환국-배달-조선)시대를 lrfhr한 고서적들을 전수받았다. 신교문화에 통한 이암을 소전거사가 알아보고서 석굴 속에 감춰져 전해오던 사서를 전해준 것이다. 

  

이암은 나중에 그것을 근거로 <단군세기>를 쓰고, 당시 소전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환단시대의 도학을 논한 <태백진훈太白眞訓>을 지었다. 이때 복애거사 범장과 청평거사 이명도 소전거사에게 비기秘記를 전수받아, 범장은 <북부여기>를, 이명은 <진역유기>를 저술하였다. <단군세기>와 함께 이 사서들은 한민족의 상고 역사와 문화의 본래 면목을 드러낸 소중한 문헌들이다.

  

이암이 언제부터 <단군세기>를 집필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단군세기> 서문을 보면, 그는 67세(1363년)에 사직에서 물러난 후 강화도로 건너가 선행리 홍행촌에 海雲堂을 지어 기거하면서 <단군세기>의 마지막 손질에 혼신을 다하였다. 그리 그 다음해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민족의 현실을 통탄하며 역사를 똑바로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웅변하는 <단군세기> 서문에서 그는 ‘인간은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 생겨나는가’, ‘인간으로서 가장 멋진 삶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명쾌한 필치로 밝히고 있다. 인성론을 중심으로 신교의 역사관을 정리한 이 서문은 대학자로서의 지적인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만고의 명문장이다. 행촌 이암, 그는 동방 한민족의 역사를 유교사관도 불교사관도 아닌 한민족 고유의 신교사관으로 저술한, 신교사관의 정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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