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인류의 역사_01
2015-06-13 11:35:54 │ 조회 26460

역사는 그 국가와 민족의 영혼이다 

저는 우리 역사학자 중에서 ‘단재 같은 분이 없다’ 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을 독립을 시킬 수 있을까? 그는, 그것은 역사공부를 시켜서, 애국심을 폭발시키면 가능하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그는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란 글을 썼어요. 그 내용을 잠깐 한번 보겠습니다. 


그 당시엔 남북한 합쳐서 2천만이니까, “어떻게 하면은 우리 2,000만 동포의 귀에, 애국이란 말이 생생하게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역사교육을 시키면 된다는 거예요. 

실제로, 일제 침략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우리 역사를 깊이 공부했던 사람들이 많아요. 백암 박은식이라든가, 단재 신채호라든가, 석주 이상룡이라든가 그런 사람들은 역사의 대가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그 눈에, 나라(國)라는 글자가”, ‘한국’이라는 글자겠죠. “배회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봉사케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혈혈누누(血血淚淚)가”, 피눈물이, “나라를 위해 솟구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도대체 그 ‘역사’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공효(功效)의 신성함이 이와 같으냐? 역사라는 것은 그 민족이, 소장(消長)변천한 사실적인 기록입니다. 

역사가 있으면, 그 나라가 반드시 흥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토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가 없어요. 영토는 잃어버려도 다시 회복을 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 동안 떠돌이 생활하다가, 그들이 그 영토를 회복해서 나라를 세우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역사 잃은 민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왜냐? 역사라는 것은 그 민족의 정신이에요. 정신을 잃어버린 민족은 다시 소생할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 구약성경이라는 것이 그들의 역사죠. 역사가 남아있기 때문에, 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회복했어요. 하지만, 요나라, 금나라…, 우리로서는 참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는 일인데, 

그들은 고구려의 직계후손입니다. 요나라는 조금 방계지만. 그들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면, 중국민족에 동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5호16국 시대 때, 선비라든가 흉노는 우리 방계 민족이거든요. 

그들도 역사를 갖고 있었다면 중국민족에게 동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 동화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사라져버렸어요, 역사 속에서. 

이 역사가 뭐냐? 역사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내려주면, 『환단고기』의 행촌 이암선생의 서문, 단군세기 서문에 보면,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라 국, 같을 유, 몸뚱아리 형 자, 역사 사, 같을 유(猶), 혼. 같을 유(猶) 자는 ‘원숭이 유’ 자인데요, 

원숭이는 흉내를 잘 내죠. 흉내를 잘 내기 때문에 ‘같다’ 이런 뜻이 나와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나라라는 것은 몸뚱아리와 같고, 나라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 몸에 있는 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가 없는 나라라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서 혼 빠지고, 얼빠진 것과 똑같다는 거예요. 역사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그 민족의 혼이 빠진 겁니다. 

아주 명문장입니다. 엄청나게 좋은 비유고.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하니 형가실혼이보호(形可失魂而保乎)아”, 혼을 잃어버리고서 가히 보존을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이 역사라는 것은, 그 국가와 민족의 ‘영혼’이다, ‘정신세계’다, ‘정신’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려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러면 ‘혼 빠진 민족’이에요, 역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정신나간 민족이라는 거에요.  

 

 

 

 

국보1호는 남대문

 

사적1호는 포석정이예요. 조선총독부에서 그렇게 지정해놨습니다. 이유는 삼국사기에 경애왕4(927) 겨울11월에 견훤이 갑자기 서울에 쳐들어갔다. 왕은 포석정에서 잔치를 베풀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전쟁 중에 놀아서 나라가 망했다는 의미에서 제1호로 지정했던 것이다. 사실은 거기서 제사 유적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보물1호는 동대문이고 국보1호는 남대문입니다. 1934827일 조선총독부에서 지정해놓은 것입니다. 동대문은 임진왜란때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입성했고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가 남대문으로 입성했습니다. 동대문, 남대문은 놔두고 서대문은 서대문형무소로 만들어놨습니다. 그래서 일제에 의해 조작된 것을 우리의 역사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침략

박은식 선생의 혈사입니다(환단고기 558페이지). 이분이 환단고기를 봤어요. 이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이에요. 그래서 세상에서 환단고기를 부정하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거에요. 사서 20만권을 강탈하고 불살랐다. 신문기사에 났고요. 일부는 가져갔고요. 오만권 정도가 가져가서 황실도서관에 2940여 종이 일제가 가져간 것.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가 남아있지 않아요. 당대 박은식 선생은 통탄하신 거에요. 그러면서 정신을 침략했거든요. 백두산인데요 만세를 부르고 있어요. 요거는 일본사람이 백두산에 가서 우리나라 조선 팔도에 혈자리 좋은 곳에 대못을 박아두고. 남산에 조선신사를 세워서. 전국에 2천개를 세웠다고 해요. 일본신을 참배하게끔 한거고요. 학생들 동원해서.

 

지금 역사는 일제가 심어놓은 역사가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원래 한국사는 살아야 하지만 일제가 만든 역사이기 때문에 걷어내야지 나라가 산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환국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9번의 국통을 이어서 왔어요. 그래서 희한하게도 3.3.3으로 되어있어요. 환국배달 조선은 뿌리고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뿌리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북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로 줄기를 편 거고. 대한민국으로 오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처음에 열매는 보잘 것 없지만 나중에는 큰 열매가 되어요. 대한민국은 열매를 맺을 시기.

지금은 뿌리역사가 드러나는 때에요. 뿌리의 모습이 열매이고, 열매의 모습이 뿌리이다. 이게 동일한 것. 열매맺을 때니까 뿌리역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처음 드러난 것은 1980년 환단고기가 드러났을 때에요. 그리고 중국에서는 환단고기 역사내용을 뒷받침 할수있는 유물이 나와요. 열매맺을 때가 되니까 뿌리역사가 우연히 드러나는 게 아니에요. 상제님 진리가 원시반본인데 원시반본은 절대정신이기 때문에 역사가 이렇게 드러나는 것.

 

지금까지는 몰랐어요.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릴건데. 1980년대 초반에 나왔는데 한쪽에서는 열광하고 한쪽에서는 일제 역사를 그대로 계승한 강단사학에서는 부정하는거에요. 위서라고.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대단한것이 수천년의 방대한 역사를, 동북아 역사를 다 담고 있는데 이걸 1년만에 위서로 만들어요. 거기 기록이 있으면 고증을 하고 답사를 하는데 위서라고 하는거죠. 깊이 연구하지 않고 단정지어서 위서로 . 환단고기는 다시 수면아래로 잠복했어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답사하고 최근 식민사학쪽은 실증사학이에요. 근데 최근 역사학은 해석학. 다양한 방면에서 해석하거든요. 언어학자는 언어를 연구해서 뿌리를 찾고. 그런 것을 통해 환단고기에 나오는 뿌리역사가 드러나게 되는 거에요.

 

오늘은 그간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원래 환국에서 전세계로 문화가 뻗어나갔다. 황하 중동쪽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도 뻗어나갔다. 이것이 거기 나오는 얘기에요. 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인데 000이라는 사람이 '중앙아시아에서 6천년 전에 큰 기후변동이 일어났다. 여기서 인간이 대거 탈출하였다.'라고 하는 거에요. 서쪽으로 가는 문명인데 서양에서는 수메르 문명이 1813년에 발견되었어요. 언어구조가 유럽과 다르다. 슈메르 프라블럼. 갑자기 왔다. 안산을 넘어왔다. 안산은 천산을 넘어왔다고 하는 거에요. 슈메르 사람들은 키안키르? 천지에서 왔다고 해요. 환인을 통치자라고 하는데 수메르에서는 '' '' . 중앙아시아의 북방민족을 탱그리라고 해요. 우리나라의 단군. 고귀한 통치자.

 

슈메르사람들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집단이에요. 동쪽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사르곤왕. 가지가 3. 삼신사상. 사르곤왕은 단군조선과 동시대. bc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고. bc2334년에 사르곤왕이 건국? 동서양에서 큰 인물이 나왔다. 큰 왕국을 건설하고. 동시에 된 것.

 

동쪽으로 간 사람들. 아메리카로 간 사람들. 최근에 손성태교수? 스페인어전공. 멕시코 이남 내려가면 스페인어를 쓰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대륙 발견하고 원주민들이 있어요. 당신들은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대화를 한 것을 기록을 해요. 원주민 일화를. 문서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풍습, 언어 이런 것을 알 수 있어요. 보니까 예사롭지 않은 거에요. 연구를 하고 계시고. 곡옥. 동물처럼 생겼는데 왕관에 보시면 곡옥이 달려있어요. 금관인데 전세계 15개가 나왔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10개가 나왔어요. 금관문화가 저기 북방민족에서 내려온거라고 얘기하는데 제일 많은게 우리나라. 샤머니즘도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왔다고 하는데 샤먼이 우리나라가 제일 많아요. 어디가 뿌리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다음에 윷놀이. 멕시코 벽화. 삼족오를 사용하고 있어요. 지팡이를 짚고 있고 머리에 갓을 쓰고 있고. 그다음에 여성. 벽화에 그려진 그림. 머리모양이 우리나라 여인과 똑같아요.

 

슈메르 사람 언어가 보면 아끼? 처음이다. 남미에서는 아뜨. 라고 한다. 우리는 아사달. 아침이라는 뜻. 아사. 아찌.? 똑같은 의미를 쓰고 있어요. 거리가 얼맙니까. 이유립선생이 '세계문명이 동쪽에서 번져나간 것이다.' 1975년에 논문을 써서 미국 대학에 다 보내버렸어요.

 

이쪽에 아즈텍 사람이 쓰는 언어 중에 다마틴이. 다기리. 점쟁이와 화가라는 뜻. 팜약이라는 말을 쓰는데. 약장수에요. 이기내꺼. 이건 내꺼다 라는 뜻. 찌찌. 어머니들 잘 아시죠? 멕시코 이건 영어식 발음이고. 스페인식으로 말하면 메기꼬라고 해요. 스페인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메기꼬라고 대답해요. 맥이들이 사는 장소. 맥이. 동이족이 가서 자리를 잡았다는거에요.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을 가보니까 원시인들이 알래스카통해 건너서 아메리카로 건너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812년에 아즈텍 사람들이 멕시코에 가보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대진국이 멸망할 때. 콜라족. 아즈텍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했다는 거에요. 콜라족이 누구냐. 코리족이다. 고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우리쪽으로 다시 와서 우리가 환기 9210? 단기 4336? 환기 단기라고 하는데 신시개천이라는 말은 특이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이유가 있어요. 원래 환국이 바이칼호 알타이산 백두산 삼위산. 환국의 영토. 이 중에서 환국지말에 안파견이 삼위산과 태백산을 둘러보시고 둘 중에 어디로 갈래? 물어보셔요. 그러니까 3천명을 데리고 가서 개천입교하라. 환웅이 태백산으로 오셔요. 신시를 건설. 나라를 건설했기 때문에 신시개천이라고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삼위산으로 왔어요. 황하 상류. 우리는 하류죠. 중국 학자는 동이족이 본래 황하 하류에 살았다고 해요. 문화가 아주 발전했다. 중국은 그 후에 한동안 내려오질 못했다.

 

환웅천황이 나라를 여셨다. 그렇게 하다가 1565년이 흐르고 신인왕검이 등장을 했어요. 단군은 신이라는 뜻. 단군은 신이라는 뜻. 사람 이름이 아니에요. 이 분이 계천해서 배달국을 이을 계. 환웅은 개천. 신인왕검은 계천. 개천은 신시를 건국한 날이다. 근데 단군조선을 왜곡시켜놨어요. 삼국유사에 보면 유일웅일호..... 쑥 마늘을 주어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는 거에요. 불견일광백일. 곰과 호랑이를 진짜 짐승으로 그려놨어요. 근데 대단히 잘못된 해석이에요. 우리나라 육군이 이런 마크입니다. 호랑이거든요. 이건 어디겠습니까? 진돗개. 이건 해병대에요. 그러면 우리나라 육군은 다 호랑이고 해병대는 진돗개입니까? 이건 상징이에요. 우리는 참을성이 많고 우직해서 웅족이다. 우리는 용맹해서 호족이다. 이렇게 한 거를 곰과 호랑이로 만들어 놓은 거에요.

 

14세 자오지환웅때까지 시간이 흘러요. 치우천황이라는 분이 하도청구국? 백두산 신시에서 이쪽으로 이사를 했어요.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쓰는 사람인데. 강이 하나 흐르고 강 이름을 구려하라고 표시했는데. 지금 현재는 요하라고 불러요. 요하의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 요하는 대진국을 멸망시킨 족이 거란족이고 요나라를 세웠어요. 그래서 요하라고 했어요. 그 전에는 구려하라고 했어요. 중국 역사책을 찾아보면 '구려국 임금을 치우라고 한다' 라는 구절이 여러군데 나와요. 치우천황을 중화삼조당에 모셔놨어요. 우리는 고조선도 인정을 안하니까 고조선 이전에 치우천황은 역사속에 등장을 못해요.

 

여기 말씀드린 1983년도 우하량유적이 발굴되었는데 구려하지역에서 나온거에요. 중국이 옛날부터 남남북북 동이? 라고 해서 자기 나라 이외에는 전부 오랑캐라고 불렀는데 그런 지역에서 이게 나왔어요(유물). 옥으로 만든 거에요. 360도 원으로 된 목걸이. 옥은 굉장히 고가이고 가공하기 어려워요. 글자 하나 새기는 게 우리나라 기술로 어려워요. 지금 나온게 5천년 전 유물인데 아주 정교하게 나왔어요. 무덤에서 발굴이 되었는데 이분은 신분이 고귀한 사람이다. 무덤에 칼도 안나오고 농기구도 없고 옥만 가득 나왔어요. 지금도 이정도이면 굉장한 신분일 것. 귀걸이도 전부 옥. 허리춤에 보면 곰의 형상으로 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웅족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용과 봉황이 나와요. 용봉문화는 중국의 것이 아니고 홍산문명을 통해 남으로 내려간 것이에요.

 

요동서안평까지 갔다. 여기가 옛날 고리국의 땅이다. 이것이 환단고기 내용. 여기가 고구려의 옛 땅에요. 그래서 고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나서 다복?이라고 했어요. 고주몽이 세운 나라가 이 쪽인데 고리국 땅을 같이 했다? 광개토열제때는 이쪽 지역 영토를 다시 되찾았는데요.

 

단군조선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드리면 그렇게 곰과 호랑이의 자손이 아니라는 거고요. 고종황제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꿨는데 그 때 하신 말씀이 '마한 진한 변한을 통합해서 삼한이므로 대한이라고 한다.'

서효사. 천제를 지낼 때 문장이 뛰어난 사람을 시켜서 글을 읽게 해요. 지금 말로는 대표기도쯤 돼요. 6세 단군때 지은 서효사. 아침해가 가장 먼저 드는 땅이다. 아까 아사달이라고 했어요. 아침땅. 그걸 한자로 표현하면 . 그 땅에는 진한 마한 번한. 진한이 진국이다. 중심국가. 그림으로 보면요. (진한 번한 마한 위치 찍어줌).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곳. 이게 북쪽에 있어요. 하얼빈은 지금도 가보면 인구가 천만이 넘어요. 고조선의 옛 수도에요. 원래 이렇게 마한진한번한은 북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치는 그렇고요.

 

단군이 1908년을 살았냐. 이건 신화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거냐면 환단고기에서 보면 1대 단군부터 21대 단군까지 천 몇 년, 22대 단군까지 43대 물리단군까지 860. 마지막 백 몇년이 고열가 단군. 정확하게 1908년이다. 일연스님이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고 한 줄로 써놓으니까 신화가 된 거에요. 일연이 삼국유사 쓸 당시는 원나라 지배당할 때. 그래서 우리역사를 축소해서 쓴거에요.

 

고조선은 굉장히 강성한 국가였는데 예를 들면 고조선에 와서 공물을 바친 나라가 쭉 나오는데 환단고기 기록이고요. 다른 역사서도 살펴보면 시라, 고래.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다가 나중에 신라 고구려 이렇게. ??

여기서 나온 유물들이에요. 청동으로 만든 건데. 이건 고인돌이고요. 별거 아닌것 같은데 대단한거에요. 지금부터 3,4천년 전에 나왔다는 게. 왜냐면 이걸 만들려면 산에서 돌을 캐고 옮겨와야 해요. 그다음에 불로 녹혀서 광물질을 채취하고 합금을 해서 두들겨서 만들어야 해요. 이걸 하려면 조직이 갖추어져야 해요. 그런 행정조직이 있어야 하고 이런 것이 나오면 여기에는 '국가가 존재했구나'라고 알아야 해요. 전세계 고인돌이 6만개 나오는데 우리나라만 5만개. 100톤짜리도 있어요. 100톤짜리를 들려면 2천명이 있어야 해요. 고조선의 국력이 얼마나 강성했는지 알 수 있어요. 

 

고조선 마지막에 가서 bc239년인데 마지막 고열가 단군이 입산하셨어요. 그러니까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했어요. 해모수가 건국하고 나서 6년이 흐르니까 5부족의 대표가 모여서 우리도 다시 단군을 모시자 해서 해모수에게 찾아가서 단군이 되어주십시오 한거에요. 진조선이 북부여로 계승이 되고. 고조선이 망한 게 아닙니다.

 

요때가 언제냐면 혼란기에요 고조선 해체시기. 중국의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다. 고조선이 저렇게 흔들리니까 우리도 통일해보자 해서 처음 통일을 한거에요. 그래서 진시황 이후 한고조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한무제때 우리나라를 쳐들어옵니다. 이 때를 보면 bc 236년 이런데 고조선 해체 후 50년 후 흉노가 처음 역사에 등장해요. 흉한 노비라고 중국사람들이 붙였는데 흉노는 고조선 제후국이에요. 하도 중국이 당하니까 이름을 그렇게 붙인거에요. 진시황이 흉노족때문에 만리장성을 쌓았어요. 진시황 다음 한나라가 등장해요. 흉노를 너무 무서워하는데. 호한야소노?한테 중국의 4대미녀 왕소군?을 바쳐요. 걔들은 뻥이 심해요. 별명이 낙안. 떨어질 낙. 기러기 안. 호한한테 바쳐져서 가는데 기러기떼가 왕소군을 보고 기절해서 떨어져죽었다 해서 낙안이에요.

소노를 이 사람들은 흉노족들은 탱리? 라고 불러요. 하늘의 아들 탱그리. 하늘의 천자다. 이렇게 강성하던 흉노가 망했어요. 왜냐면 가축들이 다 얼어죽어버려요. 갑자기 날씨가 너무 추워져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그래서 여기를 떠납니다. 서쪽으로 계속가는거에요. 375년에 서양에 나타나요. 유럽까지. 유럽에서는 이 사람들을 '' 이라고 합니다. 로마제국가 맞딱드려서 싸우게 되고 훈족이 이기거든요. 훈족은 375년에 나타나는데 동쪽에서 강력한 대왕이 나타납니다. 375년 광개토대왕. 똑같아요. 역사의 흐름이 이렇습니다.

 

훈족이 이동한 초원길이에요. 쭉 따라서 간거에요. 이 사람들이 훈족이 사는 땅이다 해서 훈가리라고 합니다. 나중에 헝가리가 됩니다. 말가르? 말갈족. 헝가리 사람들은 자신들은 마자르의 후예라고 해요. 평야지대라서 서쪽으로 와서 자리를 잡게 된 거에요. 헝가리가 로마를 쳐들어가는데 패해서 로마 교황이 협정문을 썼어요. 아틸라대왕은 말 위에 있고 교황은 말 아래서 사인하고.

 

1995년에 헝가리에서 뿌리찾기 열풍이 불어서 뉴욕 워싱턴포스트에 나왔어요. 자기들의 뿌리를 찾아보니 몽골땅까지 왔다. 우리는 유럽사람이 아니다. 분명히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이 해체가 되고 훈족이 그런 기운에 의해서 서쪽으로 가고. 선비족이 있어요. 375년에 서양에 훈족이 나타나는데 그시기에 선비족이 동방에 나타나요. 시베리아에 있다가 내려왔어요. 이 사람들이 나라를 굉장히 많이 세우는데 5 16국입니다. 그 다음에는 거란족. 거란은 대진국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요나라를 건설해요. 당시 송나라는 계속 쫓겨다니고.

 

그다음에 금나라. 금의 시조가 함보. 김함보. 김씨의 나라라고 해서 금나라다. 금나라도 보면 송나라가 남송으로 쫓겨나고 금나라가 커요. 진시황이 처음 중국을 통일할때도 고조선이 사분오열될 적에 그렇게 하고. 중국 한족은 계속 북방민족에게 쫓겨다녀요.

 

원나라는 몽골족. 환단고기에 보면 8대 단군 오사구 단군의 동생 오사달이 몽골족의 시조다. 시조산이 불칸산. 우리나라 백두산이 불한산이라고도 한다. 똑같은 말. 불가리아에는 발칸산이 있다. 발칸이나 불칸이나 똑같아요. 몽골사람들은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을 그리워해요. 한국과 연합을 하자고 해요. 우리는 관심이 없어요. 몽골인들은 한국 사람들을 보고 솔로무스?라고 해요.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해요.

 

516국 선비족이 동이 서이 북이 나누어지지는데 북이에서 수나라가 나오고. 수나라 양제, 문제. 수나라를 계승한 당나라. 선비족의 국가에요. 거란족의 요나라는 요동서안평이 수도. 여기는 고구려땅이에요. 요나라는 고구려의 후손들. 요나라를 건국한 야율아보기. 아보기는 안파견이라는 뜻. 야율이 처음 나라세우고 자신을 안파견이라고 한 겁니다. 원나라, 금나라, 명나라 주원장인데 금나라가 나중에 명나라와 싸우는데. 화극금이니까. 그래서 금나라가 청나라라고 바꿔요. 중국은 온전하게 자기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동북공정도 그 사람들의 원과 한때문에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고 40년이 지나서 한나라가 건국이 되니까 한에서 숙청을 하는 거에요. 이 사람들이 도망을 왔어요. 동쪽으로. 그중에 위만이 와서 보니까 좋은 기회가 왔어요. 고열가단군에서 해모수 단군으로 넘어가고 해모수단군이 돌아가셨어요. '동방에 수장이 없다' 해서 위만이 난을 일으켜서 번조선 왕 기준을 쫓아냈어요. 그게 역사가들이 이야기하는 위만조선이에요. 근데 이 사건이 굉장히 큰 사건이 되어요. 기준이 바다로 들어가서 안 나타나요. 만은 유민들이 한강 이남으로 가고. 기준왕은 익산으로 들어왔어요. 금와라고 하거든요. 남쪽으로 들어와서 마한진한변한이 있었는데 밑에 와서 마한진한변한 똑같이 만들어놨습니다. 고종황제가 말하는 삼한은 아래 삼한이 아니고 윗삼한을 통일한다는 거에요.

익산에 보면 어래산이 있어요. 인터넷 쳐보면 나옵니다. 기준이 온 땅이다. 익산이 백제 수도도 아니었는데 왕릉이 나오고 산성이 나오고. 궁궐터가 나오고. 기준이 있었던 곳. 1994년 기록. 00공주를 00산 성모라고 부른다. 박혁거세의 어머니.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환단고기에는 일찍이 부여황실의 사소가 남편이 없이 아기를 잉태해서 탈출해서 동옥저를 거쳐서 진한까지 내려왔다. 이 분이 서라벌에 도읍을 세우고 진한이라고 했다? 진한에서 왜 받들었냐면 부여의 황실의 자손이니까.

 

북부여의 역사를 살펴봐야 하는데요. 여기서부터 색깔을 바꿔놨습니다. 바꾼 이유가 있습니다. 이 때 한무제가 쳐들어왔어요. 위만의 손자가 있었는데 우거라는 자를 멸망시켜요. 계속 쳐들어오니까 싸움을 할 때마다 한나라 군사가 괴멸당했다. 요동서안평까지 추격을 하고. 이분이 바로 고두막한이에요. 그래서 색깔이 달라요. 여기서 고두막한이 북부여를 계승하고 태부루의 아들이 금와, 금와의 아들?은 동부여를 세우고. 북부여의 정통은 고두막한으로 넘어가고. 고무서의 딸 소서노. 사위를 봤는데 사위가 고주몽. 그래서 고주몽은 부인이 한 명 더 있는데 예씨부인 아들이 유리. 유리는 고구려로. 소서노의 두 아들은 백제로. 고두막의 후손 동명왕이라고 한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뿌리는 같아요. 소서노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 와서 백제를 세워요. 백제는 처음에 대방에 세웠다. 요동 서안평에 세운거에요. 원래 거기에 백제가 있다가 배를 통해 건너온 거에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전성기에는 군사가 백 만 이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굉장히 강성한 나라에요. 삼국사기 기록에서 우리나라 깎아내리는 기록은 긍정하고 우리나라를 추켜세우는 기록은 부정합니다. 이병도 사학자가 일제에 유리한 것만 뽑아냈어요.

 

고려 중기때 난리가 나요. 윤관장군. 후손이 함흥평야가 아니라 송화강 이 쪽에 있었다는 거에요. 고려지령이라고 비석을 세우는데 송화강 근처라고 해요. 세종실록지리지에 -000- 위치를 기록을 해놨어요. 함경북도에서 700리를 더 가야 나온다고 기록했어요. 그 땅이 점점 줄어들어요. 교과서에도 고려의 영토를 그렇게 실어놓고. 역사가 밝혀지면 영토협상을 다시 해야해요. 윤관장군이 000에 비석을 세우고 아들을 파견해서 조정에 보고를 올렸더니 조정에서 난리가 났어요. 탄핵을 하는거에요. 윤관장군이 보고도 안하고 파병을 해서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고. 그래서 땅을 다시 돌려줘요. 돌려준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여진족이 찾아와서 '우리가 일찍이 고려에서 나왔습니다. 그냥 돌려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영가라는 사람은 아까 금나라 김한보가 있고. 8대손이 아골타에요. 여기서 영가가 나와요. 고려에서 나왔으니까 봐달라고. 그래서 땅을 돌려준거에요. 돌려주고 나니까 금나라가 너무 커져서 고려가 핍박을 받아요. 이래서 되겠나 해서 묘청이 '나라의 국력을 키워서 북벌하자'고 한거에요. 묘청이 극단적으로 난을 일으켰습니다. 근데 난이 아닙니다. 왕실을 치지 않았고 왕에게 미리 고하고 군사를 일으킨 것임. 김부식이 묘청을 진압하려고 나섰는데 윤헌(?) 윤관 후손과 손을 잡고 토벌을 하고. 윤헌은 이후에 귀양을 가서 평생 후회를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사대주의가 등장했다. 신채호선생은 통탄을 해요. 나는 단언컨데 묘청의 난을 제 1대 사건이라고 하고 싶다.

 

고려 말에 가서 공민왕때는 고려라는 국호를 폐하자. 원나라의 0000으로 남자. 구한말에 가서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1911년에 환단고기가 나옵니다. 나라의 명맥이 끊긴 그 상황에서 제대로 정신 혼을 담은 역사책이 나오는 거에요. 이후 6.25를 거치고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2000년대로 왔고 어느정도 발전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역사를 되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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