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화國花, 무궁화
벨라맘
2014-03-14 13:39:12 │ 조회 3879

1억5천만년 전의 꽃중의 꽃, 무궁화





이미지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기사내용:MBC뉴스

국내 연구진이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의 유전 정보를 해독해 봤는대요.

꽃 중의 꽃, 원조꽃이라 할만 했습니다.



다른 꽃들보다 수천만년이나 앞선

1억 5천만년 전에 처음 꽃을 피운 걸로 확인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상징 무궁화.​

​고조선 시대에도 한반도에 풍성했다는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피기 시작한건지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 열쇠가 될 한반도 무궁화 유전자 정보를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완전히 해독했습니다.



100년 동안 ​한반도에 살아왔던 가장 오래된 무궁화 세 그루를 대상으로

엽록체 게놈을 분석해 염기서열 16만 1천 개와 유전자 105개를

샅샅이 다 찾아낸 겁니다.

이 유전 정보로 무궁화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시점을 역추적해봤더니,

무려 1억 5천만 년 전.​

​인류가 존재하기 훨씬 전, 시조새와 공룡의 시대에 처음 탄생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목련과 장미 등 수많은 꽃이 나타난 꽃의 빅뱅시대보다도 2,3천만 년 앞서,

'꽃 중에서도, 맏이 꽃'인게 처음 확인됐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이효신박사:"무궁화는 속씨 식물(꽃식물)가운데

가장 빨리 분화된 종의 하나인데, 분화된 이래로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형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산림과학원은 중국 등 다른 나라 무궁화들의 유전정보도 추가로 해독해,

우리 무궁화만의 고유 특징은 물론 무궁화가 처음 탄생한 지역이

어딘지도 연구할 계획입니다.

 

이미지출처:네이버지식백과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산해경 山海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8∼3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지리서(地理書)라고 전하여 내려오는 문헌으로,

동진(東晉) 때 곽박(郭璞)이 그 때까지의 기록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군자국은 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루어 아주 예로부터, 고조선 시대에도 이미 무궁화가 한반도에 널리 번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 효공왕이 문장가 최치원(崔致遠)에게 작성시켜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 가운데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일컬음)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楛矢國)은 강폭함이 날로 더해간다.”고 한 것이 있다.

 

≪구당서 舊唐書≫ 199권 신라전(新羅傳) 737년(성덕왕 36) 기사에도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고 한 것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신라시대 이미 우리 나라를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한국 최고의 화목에 관한 책인 ≪양화소록 養花小錄≫을 보면

“우리 나라에는 단군(檀君)이 개국할 때 무궁화[木槿花]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무궁화의 나라(槿域)’라 말하였으니,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봄을 장식하였음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일본의 ≪왜기 倭記≫에는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무려 2,100여년 전 지나(支那)에서도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왕실화가 배꽃[梨花]으로 정해져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이 조선에 들어옴에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진작에 노력하여, 붓과 말로 천자만홍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로되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3, 4개월을 연속해 핀다고 하여, 그 고결함과 위인적 자용(偉人的姿容)을 찬미하였다. 따라서, 무궁화강산 운운은 자존된 조선의 별칭인데……”라는 기록이 있어, 우리 민족과 무궁화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1935년 10월 21일 ≪동아일보≫ 학예란에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제목 아래 “아마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조선에도 개화풍이 불어오게 되고 서양인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당시의 선각자 윤치호(尹致昊) 등의 발의로 양악대를 비롯하여 애국가를 창작할 때 애국가의 뒤풀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

안창호(安昌浩) 등이 맹렬히 민족주의를 고취할 때 연단에 설 때마다, 가두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무궁화동산을 절규함에, 여기에 자극을 받은 민중은 귀에 젖고 입에 익어서 무궁화를 인식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후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말은 우리 한민족의 가슴 속에 조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뜻으로 남게 되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학명으로 미루어 시리아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원산지가 시리아라는 데 대하여 점차 의문이 제기되고 최근 인도·중국·한국 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다. 

 

 

무궁화의 명칭은 여러 가지이며 중국에서는 목근(木槿)·순영(舜英)·순화(舜華)·훈화초(薰華草)·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번리초(藩籬草) 등으로 쓰였으나 무궁화로 쓰인 적은 전혀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로 무궁화(無窮花·無宮花·舞宮花) 등으로 쓰였으며, 근래에는 무궁화(無窮花)로만 쓰이고 있다.

 

 

 

<<무궁화 사건>>

 

 

전 강토에 민족정신의 상징인 무궁화를 심어 무궁화 삼천리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을 확산, 고향인 홍천에다 무궁화밭을 가꾸어 해마다 수십만 그루씩 각 지방의 학교, 교회, 사회단체에 공급하였다. 일제는 이러한 그의 행동이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반일적 사상의 발로라 하여, 1933년 이른바 '무궁화사건'이란 이름으로 체포하여 옥고를 치르게 하였다.

일제는 무궁화가 태극기와 함께 민족지도자들에서부터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민족과 조국을 상징하는 강력한 존재임을 간파하고, 무궁화를 우리 민족과 멀리 떼어놓기 위한 흉계를 꾸몄다. 그들은 무궁화를 볼품없는 지저분한 꽃이라 경멸하여 격하시켰으며,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느니 심지어 '눈이 먼다'고 까지 하여 멀리 피하여 가도록 가르쳤다.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국화말살정책을 강행, 무궁화를 심지 못함은 물론 심어진 무궁화를 모두 캐내도록 하고 무궁화를 캐어낸 자리에는 사꾸라를 심도록 하였다. 이는 우리 민족의 혼을 뿌리채 말살하고 일본인화하겠다는 그들의 식민지정책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근세의 명수필가로 알려진 김소운은 광복 후 일본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내용의 서간체 연재수필을 썼는데, 제목을 「목근통신」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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