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인의 천부인과 홍산문화 나만기 유적의 옥도장
환인이 하사한 옥새, 천부인 3개
<삼국유사>'고조선기'에는 천부인과 관련한 내용이 나옵니다.
庶子桓雄이 數意天下하야 貪求人世어늘
父知子意하시고 下視三危太伯하시니
可以弘益人間이라 乃授天符印三箇하사 遣往理之하시니라
환웅이 천하에 뜻을 두자 아버지 환국의 7대 지위리 환인이 그것을 알고 천부인 3개을 주어 동방에 가서 다스리게 했다, 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를 보고 어떤 이들은 반문하겠죠. 꼴갑 떨고 있네. 환웅이 배달국을 건국한 것이 BCE 3898년이면 지금으 로부터 6천 여년 전이고, 그때는 신석기 시대인데, 어떻게 도장이 있었겠냐고. 지위리 환인이 하사했다면 옥새라 는 이야기인데, 그때 무슨 옥새 문화가 존재했겠냐교. 그러나 그 때 도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홍산문화 나만기 유적에서 출토한 옥도장
홍산문화에 속하는 내몽고 나만기奈曼旗 유적에서 두 개의 옥인장이 출토되었습니다. (은허에서는 BCE11세기 ~BCE 9세기 구리로 만든 동인장銅印章 3개가 출토됨) 중국학자들은 이 옥인장에 모두 구멍이 뚫려있어 끈을 사용 했던 것으로 보고 양식에 따라 동물형뉴 옥인장(그림 1)과 쌍두조형뉴 옥인장(그림 2)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동물형뉴 옥인장과 도장면. 무엇을 의미하는 부호인지 몹시 궁금한데요, 금문金文처럼 접근하면 해 독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옥인장에 끈을 꿰어 의복에 차고 다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옥인장이 홍산문화의 특징인 옥으로 만든 용과 새 등의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어 만들어진 시기를 홍산문화시기(BCE 4500 〜 BCE 3000)로 추정하며 ‘중화 제일인中華民族第一印’이라 명명했습니다.
도장면은 현재와 같이 양각을 했는데, 도장면에 새겨진 그림은 글자인지 부호인지 해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 하연 유적의 채색도기에서도 여러 형태의 부호와 문양이 발견되는데, 이런 부호가 가림토 문자의 원형이 된 게 아 닐까요?
<소하연 채색 토기의 부호와 문양...>
인장은 정치적 지도자의 출현을 의미
옥인장玉印章이 출토된 나만기의 유적들에서도 흙으로 만들어진 성벽이 발견되었습니다. 성벽 안에서는 많은 양 의 채색 질그릇을 비롯한 다양한 양식의 질그릇과 옥기, 뼈와 뿔 및 돌로 만든 생산도구와 방직도구, 재봉도구 등 이 출토되었습니다.
성곽 유적은 정치적 지도자가 무리를 통치하며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의 자취를 보여주는 정치적 구조물입니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생산한 옥기를 비롯한 수공업품과 농업품 등으로 큰 규모의 교역을 진행하였을 것 이고 이 과정에서 인장이 쓰여졌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장은 정치 지도자가 직권을 행사하는 상징물이 며 공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다. 특히 나만기의 여러 유적들에서는 한민족 문화의 특징인 새김무늬와 기하학문 양의 질그릇이 출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