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기자조선의 실체는 기씨 6제후의 130년
타나토노트
2015-01-05 12:38:52 │ 조회 964

천년 기자조선의 실체는 기씨 6제후의 130년

 

성헌식의 ‘대고구리’[고구려 강역<7-하>]…엄청나게 부풀려진 기자조선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은나라 왕족 기자가 주 무왕을 섬길 수 없다며 조선으로 망명하려하자,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현령)에 봉했다는 기록이 <사기 송미자세가>에 기록되어 있다. 기자를 봉했다는 조선은 낙랑군에 속한 ‘조선현’이라는 지명을 나타내는 것이고, 기자가 망명한 조선은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참고로 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우리 고대국가명은 지명과 겹치므로, 국명인지 지명인지 여부를 잘 판단하여 해석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우리의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국명과 지명을 바꾸어 해석하는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기자가 망명할 당시 조선연방의 직접통치강역은 진조선(진한)과 막조선(마한)과 번조선(번한)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번조선이 가장 남쪽에 있던 땅으로 고대중국과의 경계였다. 은나라 망명객 기자는 번조선 땅의 수유(須臾)라는 곳에 정착했기에 수유를 기자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하튼 기자와 그의 후손들은 수유 땅 일대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성씨 중 행주 기씨(幸州奇氏)와 서씨(徐氏)와 태원 선우씨(太原鮮于氏)와 청주 한씨(淸州韓氏) 등이 기자를 시조로 모시고 있다. 기자의 후손은 아니나 기자가 망명할 때 같이 따라온 사람들의 후손은 태인 경씨(泰仁景氏) & 해주 경씨(海州景氏), 토산 궁씨(兎山弓氏), 봉화 금씨(奉化琴氏), 함평 노씨(咸平魯氏) & 함풍 노씨(咸豊魯氏) 등이 있다.
 

 

 ▲ 시조 기자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는 청주 한씨 종친회. <사진=필자제공>
 

번조선 마지막 6왕이 기자의 후예
 
그렇게 그럭저럭 약 800년의 세월이 흘러, 기자의 36세 후손에 기후(箕詡)라는 자가 있었는데 역시 수유 땅에 살고 있었다. 당시 번조선을 다스리던 왕은 수한이었다. 연나라가 번조선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자행하자, 기후가 오천의 병사를 데리고 가서 수한 왕을 도와 전투를 벌여 연나라를 격퇴했다.
 
46세 보을 단군 19년인 B.C 323년 수한 왕이 후사 없이 죽자 기후가 군령을 대행하다가, 연나라가 왕을 칭하고 쳐들어오려고 하니 병력을 이끌고 입궁하여 자칭 번조선 왕이라 칭하고 상국인 대부여(조선)의 단제(檀帝)에게 사후 윤허를 받게 된다. 기자의 먼 후손 기후가 정식으로 조선의 제후인 번조선 왕이 되는 장면이다.
 
<사기>에 위 내용과 비슷한 기록이 있으며, <위략>에도 “옛날 기자 이후에 조선후가 있었고, 주나라가 쇠퇴해가자 연이 스스로 왕을 칭하고 동으로 공략을 하자 조선후도 스스로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을 쳐서 주 왕실을 받들려 했는데, 대부(大夫) 예(禮)가 간하므로 이를 중지하고 예를 파견하여 연을 설득하니 연도 전쟁을 멈추고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 기준의 도주로 적색은 식민사학계, 녹색과 청색은 재야사학계의 이론으로 패수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다. 진짜 패수는 보라색으로 중원 한가운데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시 일대를 흐르는 강이다. <이미지=필자제공>


정식으로 번조선의 왕이 된 기후가 죽자 아들 기욱이 즉위하고, 기욱이 죽자 BC 230년 아들 기석이 즉위하고, 기석이 죽자 BC 191년 아들 기윤이 즉위하고, 기윤이 죽자 BC 172년 아들 기비가 즉위한다. 기비는 해모수가 대부여를 무너뜨리고 북부여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런 기비가 죽자 아들 기준이 즉위했고, 마지막 왕 기준의 재위 중 연나라에서 위만이 망명해오는 것이다.

 

위만의 망명과 韓의 성립
 
<북부여기>에 따르면, 시조 해모수 단군 “병오 45년(B.C195) 연나라 노관이 한(漢)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부장 위만은 북부여에 망명을 요구했으나 해모수께서 이를 허락치 않으셨다. 번조선 왕 기준(箕準)이 크게 실수하여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 운장을 떼어 위만에게 봉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노관은 한고조 유방의 죽마고우이며 한나라 개국공신으로 연(燕)을 다스리는 왕에 봉해졌다가, 유방이 죽고 여태후가 집권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흉노로 망명하는 인물이다. 노관의 부장인 위만의 망명을 번조선 왕 기준이 받아들이자,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상투를 틀고 호복(胡服)을 입고 망명한다. 기준 왕은 위만을 중용하여 벼슬과 봉지까지 주었던 것이다.
 

 

 ▲ 도적 위만을 찬양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의 교과서 내용.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울 책무가 막중한 동북아역사재단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통해 중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자료=필자제공>
 


 ▲ 중국이 그린 기자조선의 중심은 평양. <이미지=필자제공>

이듬해인 B.C 194년 변방에서 국경을 지키고 있던 위만은 기준 왕에게 “한나라가 쳐들어오니 도성으로 들어가 왕을 호위하겠다”고 거짓보고를 올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도성으로 쳐들어가 기준 왕을 공격한다. 급습을 당한 기준 왕은 왕위를 버리고 피신을 하게 된다. 이를 흔히 역사적으로 위만이 기자조선을 빼앗아 위만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위와 같이 기자의 먼 후손 중 36~41대가 조선의 일부인 번조선에서 왕(제후)을 한 것이 전부였는데, 이를 조선왕조 유학자들이 41대 927년의 기자조선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리고 위만은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번조선의 왕위를 빼앗은 도적(盜賊)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위만조선이라 부르며 기자조선에 이어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기자조선 왕으로 둔갑한 도깨비들(추존 왕)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기준은 추종세력들을 데리고 해(海)를 지나 韓의 땅으로 가서 마한을 공격하여 파하고는 韓나라를 세우고는 자신의 성까지 한씨(韓氏)로 바꾼다.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어 시조 기자를 문성대왕(文成大王)으로 추존하고 이후 35세까지의 조상들을 왕으로 추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청주 한씨의 중시조는 기준이 되고, 기자가 시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청주 한씨의 족보에서 명확히 입증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추존 왕) 태조 문성대왕 재위 44년간, 2세 장혜왕 25년, 3세 경효왕 27년,
4세 공정왕 30년, 5세 문무왕 28년, 6세 태원왕 5년, 7세 경창왕 10년,
8세 흥평왕 25년, 9세 철위왕 18년, 10세 선혜왕 29년, 11세 의양왕 53년,
12세 문혜왕 50년, 13세 성덕왕 15년, 14세 도회왕 2년, 15세 문열왕 15년,
16세 창국왕 13년, 17세 무성왕 26년, 18세 정경왕 19년, 19세 낙성왕 28년,
20세 효종왕 17년, 21세 천노왕 24년, 22세 수도왕 19년, 23세 휘양왕 21년,
24세 봉일왕 16년, 25세 덕창왕 18년, 26세 수성왕 41년, 27세 영걸왕 16년,
28세 일민왕 17년, 29세 제세왕 18년, 30세 정국왕 33년, 31세 도국왕 19년,
32세 혁성왕 28년, 33세 화라왕 16년, 34세 예문왕 8년, 35세 경순왕 19년,
(번조선 왕)
36세 가덕왕 후(詡) 27년간 재위, 37세 삼노왕 욱(煜) 25년간 재위,
38세 현문왕 석(釋) 39년간 재위, 39세 장평왕 윤(潤) 19년간 재위,
40세 종통왕 비(丕) 12년간 재위, 41세 애 왕 준(準) 26년간 재위
 
참고로 한을 세운 기준의 본거지는 상당(上黨)이라는 곳으로 산서성 동남부에 있는 장치시 장자현 일대이다. 수양대군(세조)이 일으킨 계유정란의 주역 한명회(韓明澮)의 호가 상당인 이유는 상당이 청주 한씨를 상징하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청주시 상당구가 있는데, 이는 기준의 후손 중 누군가가 그곳으로 들어와 산 곳이지 원래 한씨의 본향은 아닌 것이다.

 

 

 

 ▲ 조선왕조가 평양에 조성한 기자릉으로 당시 조선은 중국과 이론적 맥을 같이 하는 사대사상에 빠져 있었다. <사진=필자제공>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는 국호를 청하자 명나라에서 조선이라는 국호를 하사한다. 그런데 주원장이 하사한 조선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기자조선을 본받으라는 의미이고 조선 사람들은 기자의 후예가 되라는 뜻이었다. 또한 유학을 국본으로 삼은 조선유학자들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공자의 나라를 흠모하게 되어 중화사대모화주의가 이 땅에 깊숙하게 뿌리박히게 되는 것이다. 태종 때 권근이 쓴 〈동국사략〉부터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상고사체계가 확립되었고, 율곡 이이의 <기자실기>에 의해 집대성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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