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계승했다는 천년 기자조선은 허구다
타나토노트
2015-01-05 12:53:04 │ 조회 559

조선이 계승했다는 천년 기자조선은 허구다

 

성헌식의 ‘대고구리’[고구려 강역<7-상>]…“아이가 거인국 임금 봉한 격”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1976년 북한 평남 덕흥리에서 발견된 고분벽화에는 무덤의 주인공인 유주자사 진에게 하례를 올리고 있는 13명의 태수가 그려져 있다. 그 중에 식민지 한사군으로 잘 알려진 낙랑군 태수와 현토군 태수가 있다. 이미 지난번 칼럼에서 고죽국 백이·숙제 무덤의 발견으로 유주에 속한 요서군와 요동군의 위치가 산서성 남부였다고 명백하게 밝힌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군도 유주에 속하는 군이므로 요동군·요서군과 가깝게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우리 역사의 최대 치욕이었던 한사군이 과연 존재했는지 여부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러려면, 그 이전의 역사인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기자와 위만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단군조선이 아닌 기자조선을 계승한 조선왕조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을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북한은 단군조선, 후조선, 만조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단군조선이란 용어는 기자조선과 위만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라는 나라는 원래 없었기 때문이며, 단군왕검께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적은 있으나 역사상 ‘단군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덕흥리고분의 벽화(위)와  유주가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을 표시한 지도. <사진·이미지=필자제공>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군조선’ 또는 ‘고조선’이라는 이상한 역사용어는 위화도회군으로 정권을 쥔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는 명나라에게 ‘조선(朝鮮)’이라는 나라이름을 하사받아 사용하게 됨으로써 단군의 조선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붙인 용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런데 이는 선조(先祖)를 모독하는 대단히 불경스러운 일로써, 3700년 전 단군왕검께서 세운 나라이름과 같은 국호를 쓰려면 서로 구분하기 위해 후손되는 자가 당연히 후조선(後朝鮮)으로 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나중에 청나라가 되는 누루하치의 후금(後金), 후연(後燕)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단군의 후손인 이성계의 조선은 단군왕검의 조선이 아닌 중국인이 세웠다는 기자조선의 조선을 이어받은 것임을 천명했다는 것을. 이는 조선 초 정도전이 지은 <조선경국전>에 잘 나타나 있다. “기자를 조선후로 봉한다는 주 무왕의 명을 받는다”로 시작하는 <조선경국전>에는 조선이란 국호를 명나라로부터 받은 경위와 기자조선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차 있다.
 

 

 ▲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사진=필자제공>

여하튼 현재의 이론으로는 BC 2333년 세워진 고조선이 부족형태로 천년 넘게 존재하다가, 중국의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 왕에 봉하자 기자조선이 세워져 900년 넘게 통치되다가, 마지막 왕 기준 때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에게 정권을 잃어 위만조선이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 BC 108년 위만의 손자 우거왕이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고조선이 망하고 그 땅에 식민지 한사군이 설치되어 400년 넘게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 이론은 중화 사대모화사상에 물든 조선왕조와 조선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 우리를 뿌리 없는 민족으로 만들려는 일제가 만들어낸 이론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할 수 있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의 역사를 원형대로 복원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테마이며,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찾느냐 못 찾느냐 하는 중차대한 역사적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서에 그려진 기자의 모습(위 사진)과 조선왕조 때 평양에 조성된 기자의 무덤 전경. <사진=필자제공>


(1) 기자와 천년 기자조선이란
 
기자(箕子)의 이름은 서여(胥餘) 또는 수유(須臾)라고도 하며, 은나라 말기 왕족인 미자(微子), 비간(比干)과 함께 은나라 3현 중 한 사람이었다. 기자는 조카인 은나라 주왕에게 간언하다 옥에 갇히고, 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기자를 석방하고는 불러다 ‘하늘의 도’에 대해 물었다. 기자가 홍범구주에 대해 설명하자 이에 감동한 주 무왕이 기자를 신하로 삼으려 했으나, 기자는 은나라 왕족인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는 조선으로 망명하고 만다. 그러자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한다.
 
기자는 5천명의 무리와 함께 조선으로 와서 왕이 되어 평양에 도읍하고는, 백성들에게 문명을 가르치고 8조금법과 정전제를 실시하고 농사짓는 법과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기자 이후 그 후손들은 900년이 넘도록 조선을 통치했으며 마지막 기준(箕準) 왕이 위만에게 패해 나라를 잃는다는 것이 기자조선의 실체이다.
 
(2) 기자조선의 허구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년 기자조선은 완전 허구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자는 천년 넘게 지속된 조선을 뒤엎고 나라를 세울만한 힘을 가진 장수 또는 정치가가 아니라, 단지 현명한 사상가며 학자일 뿐이다. <단군세기> 25세 솔나 단군 “정해 37년(BC1114) 기자가 서화에 옮겨가 있었는데 인사 받는 것도 사절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서는 기자를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후에도 조선은 나라를 잃지 않고 22분 단군에 의해 900년 가까이 더 통치된다.
 
둘째 천년 기자조선이 생긴 이유는 <사기>에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고 신하가 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조선의 왕에 봉한 것이 아니라 아래 <한서지리지>에서 보듯이 유주의 낙랑군에 속한 조선현의 현령에 봉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주 무왕이 이웃나라 조선의 왕으로 기자를 봉할 수도 없거니와, 만일 조선의 왕에 봉했다면 이는 <사기 송미자세가>에 기록될 작은 일이 아니라 <사기 주본기>에 기록할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또한 기자는 조선현령에 봉한다는 교지를 받고는 이를 거부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로 망명했기 때문에 ‘신하가 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남은 것이다. 참고로 조선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발해라는 국명도 지명에서 유래된 것을 중국이 악용하여 동북공정을 획책하고 있다.
 
(乐浪郡 낙랑군) 한무제 3년에 설치했다. 가구 수는 6만2812호, 인구는 40만6748명, 운장이 있으며 25개현이 있다. 조선현, 패수, 수성, 대방, 둔유, 루방현 등이다. 패수현 서쪽으로 증지현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함자현에서 대수가 서쪽으로 대방현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분려산에서 열수가 나와 서쪽으로 점선까지 820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하·은·주는 황하변 하남성에서 천리도 안 되는 영토를 가졌던 소국. <이미지=필자제공>

셋째 기자가 주 무왕에게 설명한 <홍범구주>는 바로 조선의 2대 부루 단군이 태자 때 순임금의 신하 우사공에게 전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이다. 이 정도로 앞선 학문과 기술을 가진 조선의 제왕을 어찌 일개 주나라 무왕이 함부로 봉할 수 있으리오! 또한 맹자는 “하후 은나라 주나라가 융성했을 때의 강역도 일천리가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그 나머지 땅은 모두 단군이 통치하던 조선의 영토라는 말인 것이다. 키 작은 어린애가 거인국의 임금을 봉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중에서도 어불성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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