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 환단고기-애국사관과 식민사관 사이에서
타나토노트
2012-11-12 23:45:18 │ 조회 2931

환단고기-애국사관과 식민사관 사이에서

 


<환단고기-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환단고기의 진위 논란은 자칫 엉뚱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주류 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대부분 후세에 위작된 책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많은 재야 사학자들은 이를 부정해왔다. 또 한국 고대사의 기원을 지나치게 높게 잡고, 이를 미화하는 등 애국사관의 입장에서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한편에선 일제 식민사관에 오염된 책이라는 지적도 있는 등 환단고기는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켜 왔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 둘 것은 환단고기가 비록 내용과 용어의 일부가 후세의 것이라 해도 아직 책 자체가 완전히 위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환단고기는 책 앞머리에서, 1911년 묘향산 단군암에서 선천 사람 계연수가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라는각기 다른 4종류의 책을 필사하여 하나로 묶은 다음 이기수의 감수를 받아 펴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rn그렇다면 이 책의 편찬자 계연수는 누구인가? 1909년 무렵에 결성된 단학회의 후신인 단단학회측 자료에 따르면, 평안도 지방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속에 기존의 대종교와는 별도로 단군에 관한 각종 사료를 수집한 후 단군 연구단체를 조직한 인물이다. 이기는 물론 이 책의 감수를 했다는 계연수도 평안도 사람이다.

rn이 단체의 회원들은 3.1운동 후 만주로 건나가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인 서로군정서를 주도했는데, 계연수도 이들과 함께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환단고기를 편찬했다. 그는 1920년 사망하기 전에 다음 경신년(1980)이 되거든 이 책을 세상에 내놓으라고 원고를 이유립이란 사람에게 넘겼다. 그리하여 1979년 수십 부가 영인되고, 1980년에는 일본인 카시마 노보루가 일어로 변역하면서 세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4권의 책을 묶어 편찬했다는 환단고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체제를 갖고 있다. 먼저 삼성기는 원래 안함로가 지은 것과 원동중이 지은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계연수가 소장하고 있던 안함로 저작의 책을 삼성기전 상편으로, 태천의 백관묵으로 부터 얻은원동중이 저술한 것을 삼성기전 하편으로 하여 삼성기전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삼성은 환인과 환웅, 단군을 가리킨다.

 



<단군세기저자 행촌이암>



rn단군세기는 고려말 이암이 저술한 책으로 47대 약 2100년에 걸친 단군 조선의 편년사, 그러니까 연대순으로 기록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정리해 놓고 있다. 북구여기는 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인 이맥이 편찬한 것으로 해모수에서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에 이르는 북부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태백일사는 이기가 소장하였던 것으로 우주의 생성에 관한 내용에서부터 환인이 다스렸다는 한국의역사, 이어서 삼국시대 이전의 시대를 다룬 진한,마한,변한의 역사를 그리고 단군 신앙과 관련된 경전,교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환단고기는 한국 상고시대의 정치와 종교를 서술한 사서라 할 수 있다.


rn현재 전하고 있는 책은 1949년 이유립이 오형기에게 정서시킨 것이다. 그 대본이라 할 환단고기는 필사본으로 짐작되는데 원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편찬하고 이기가 감수하여 1911년 인쇄되었다. 그 인쇄본은 아직 찾을 수 없고, 이유립이 소장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필사본도 역시 찾을 수 없다. 현재 나돌고 있는 것은 오형기의 정서본이 1979년 이유립에 의해 영인되어 전하고 있다.


*왜곡 부분,후세 용어도 많다.

환단고기가 교과서나 강단 사학에서 밝히지 못한 우리 고대사의 여러 '찬란했던'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위작설'에 시달리며 사료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이 책에 수록된 네 책의 저술 연대는 모두 조선 전기 이전으로 되어 있다. 1911년에 인쇄되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1979년 이젠에 환단고기에 나오는 네 책은 물론 이 책을 인용하고 있는 문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환단고기에 실린 네 책이 근애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도학 교수는 환단고기를 위서로 간주하는 논자들의 주장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이 책이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그 편찬부터 약 7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다는 것. 계연수나 이유립이 책의 공개를 늦추었던 동기가 충분히 납듭되지 않기 때문에 그 편찬 시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다.

rn둘째, 이 책의 내용상 관직명,지명,용어 등에 있어서 시간적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가령 고구려의 교육기관인 '경당'이나 그 관직인 '욕살'등이 단군조선 때에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고 '문화','원시국가'등을 비롯한 근대적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재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셋째, 이 책은 일제시기에 소개된 신채호의 상고사 인식체계와 그 용어 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에 작성된 위서로 밝혀진 단기고사의 영향까지 받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

rn(세가지 주장은 이도학, 환단고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퍼옴)

조인성 교수는 보다 구체적으로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적 비판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단군세기, 북부여기,태백일사에는 청나라 때부터 사용된 지명이 자주 나오고 있는 세가지의 예를 든다.

rn1. 무자 7년 영고탑 서문 밖 감물산 아래에 삼성사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지냈다

rn2. 계해 2년 제가 영고탑에 순행해 흰 노루를 얻었다.

rn3. 무자년에 마한이 명을 받을고 경사에 와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조인성 교수의 한국사시민강좌 제 2집에 실린 글에 따르면 여기에 나오는 '영고탑'은 청나라 시조의 전설과 관련하여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영고탑이라는 지명은 청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사용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rn이부문과 관련 이도학 교수는 다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rn가령 청나라의 발상지인 만주 길림성 영안현에 있는 영고탑이란 지명이 환단고기의 단군조선사에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영고탑을 개축하고 별궁을 지었다"고 하여 영고탑을 탑으로까지 오인하고 있는 구절이 보인다.

 

그런데 영고탑이라는 지명은 원래 청나라 시조 형제와 관련해서 생겨난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만주어로 '영고'는 여섯이라는 뜻을,'탑'은 앉는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청나라 조정이 편찬한 '만주원류고'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영고탑이란 지명은 청나라 이전으로 소급되기 조차 어렵다. 어쩌면 이것이 환단고기 자체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암이니 이맥 등과는 관계없이 그보다 훨씬 후대에 환단고기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rn뿐만 아니라, 평양의 명승지인 모란봉까지도 단군조선과 관련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기원전 20세기경에는 적어도 벼농사가 시행된 기록이 보이지만, 이는 현재의 고고학적인 지견과도 동떨어진 내용이다. 그 밖에 고구려의 교육기관인 '경당'이나 고구려의 관직인 '욕살' 등이 단군조선 때에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원시국가'를 비롯한 현재거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점도 환단고기에 대한 의문을 한층 높여주는 요인이 된다. 이 같은 지적은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도학, 위의글

환단고기의 서문에서 "나라가 형이라면 역사는 혼이라, 형이 혼을 잃고 보존될 수 있는가"란 대목도 박은식의 한국통사의 서언에서 "대게 나라는 형이고 역사는 신이다. 지금 한국의 형은 허물어졌으나 신만이 홀론 존재할 수 없는 건인가. 이것이 통사를 저술하는 까닭이다. 신이 존속하여 멸하지 않으면 형은 불활한 때가 있는 것이다"라는 대목과 비슷하여 '위작'의 근거로 지적된다.

* 일제 식민사관에 '오염' 지적도

환단고기를 일역하여 퍼뜨린 일본인 카시마는 일본의 극우적 성향의 사학자로서 '녹도사학'이라는 칭호까지 받고 있는데, 그의 환단고기 해제도 일본과 조선 고대사의 연관성 부분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박광용,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많다. 역사비평)


박 교수는 환단고기가 일제침략으로 나라를 잃어서 강압적인 무단 통치가 시작된 직후인 1911년에 계연수가 썻다고 기록되어 있는 범례에서부터 사실은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된다"면서 "세계 인류가 대등하게 모여서 함께 존재함을 축하하기 위해서이다"란 부문도문제로 제기했다. 강도 일본에 적극 투쟁해야 할 시기에 일본 민족도 포함한 세계 인류의 대등한 공존을 내세운 의도가 석연치않다는 주장이다. 또 고려 우왕 말년까지의 대외항쟁사를 기록한 태백일사에는 당연히 있어야할 왜구와의 싸움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는점에서 이 책이 일제 군국주의에 의해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rn환단고기를 위서로 간주하는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이도학은 이 책의 "초고는 빨라야 1949년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며, 그 소장자인 이유립이 그 뒤 그것을 수정,보충하여 1979년 세상에 내 놓은 것으로" 추정한다.

 

rn또한 박광용 교수는 편자의 성향과 관련, 민족주의 인사가 아닌 식민사관에 젖은 "친일적 인사들이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호도하기 위한 합리화론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오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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