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환단고기 속 이야기-이존비
타나토노트
2013-01-04 22:56:12 │ 조회 1161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신교 사관이나 곧은 역사의식을 가져 후대에 귀감이 될 만한 분들이 많으나 그 중에도 오늘 소개하는 이 분은 환단고기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고려의 문관, 이 존비

 

이존비(1233~1287)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관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왕세자가 글을 배우는 서연에서 우리 나라의 자주와 부강의 정책을 논하였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에 비해 고려 충렬왕 당시의 사대적 사고가 후세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니 자강을 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에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또한 왜(일본)를 대하는 다섯 가지 계책을 주장하였는데, 그 내용은 1. 호구를 상세히 파악하여 전 백성을 병사고 만들 일, 2. 병농 일치의 제도를 만들고 바다와 육지를 함께 지킬 일, 3. 군량을 저장하고 전함을 만들 일, 4. 수군을 확장하고 육조도 겸하여 익힐 일, 5. 지리를 상세히 알아 두고 인화를 확보할 일 이었다.  

 

충렬왕 7년에 원나라가 일본을 토벌할 식량을 10만 곡이나 준비하라고 하여 아무도 이 일에 나서지 않았으나, 이 때 이존비가 영남으로 내려가 곡식을 곧장 준비했다는 일화가 묘비명에 기록되어 있다.

 

이존비의 이야기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은 충렬왕과 북경 연녀의 이야기이다.  

 

충렬왕이 연경(지금의 북경)에 있을 때 원나라가 왕의 마음을 회유하기 위하여 연녀라는 기생을 접근하게 했다. 충렬왕은 결국 연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이존비가 원나라의 속셈을 알고 환국하기를 여러 번 주청하여 결국 왕을 귀국길에 오르게 했다.  

 

이별할 때에 연녀가 선물한 꽃이 시들자, 왕이 귀국하기 전에 다시 연녀를 보기 위해 연경에 가려고 했다. 이존비가 왕을 대신해 연경으로 가 연녀를 만나고 그녀의 편지를 받아 왔는데, 그 내용을 보면 왕이 더욱 걱정하(고 정사를 놓)게 될까 보아 편지를 다른 내용으로 바꿔 써서 올렸다. 그 편지를 읽은 왕은 연녀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해 노하여 바로 고려로 돌아왔다. 이존비가 나중에 편지를 바꾼 일을 사실대로 고하였더니, 충렬왕이 다시 크게 노하여 관직을 빼앗고 그를 귀양 보냈다. 그러나 태자와 여러 신하들이 그를 풀어달라고 했고, 임금도 후회하며 다시 불러들였으나, 그 사자가 이존비가 있는 곳에 이르기 전에 그가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에 태자가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주군이 사랑한 여자가 주군의 마음을 흐리게 될 것을 우려해 편지를 숨기는 이야기가 '다크나이트'의 알프레도 집사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고려의 이존비가 했을 줄이야...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화임에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


이존비 선생은 고성 이씨의 중시조로, 그의 손자가 바로 '환단고기'의 두번째(세번째) 책인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 선생이다. 고려 당대에 자주와 부강에 관하여 올렸던 그 주장에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환단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어 상고사에 대한 뚜렷한 역사인식을 보여 준다. 그가 회당상인에게 준 시가 '동문선'에 전하고 있다.

 


↑이존비 묘 ( 충북 청원군 소재/ 사진 출처: 순흥안씨 문숙공파 카페

 

이존비의 묘비명 (부분) 

 

공은 사람됨이 마음의 본바탕이 평온하고 조용하여 흔들림이 없었다.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고, 욕심 없이 담담하게 지냈다. 비록 재보(宰輔)의 지위에 이르렀어도 항상 귀한 손님을 접대하기를 마치 서생(書生)과 같이 겸손하게 하였다.

 

(중략)

 

...마음은 조용하고 온화하였으며, 꽃다운 행적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하도다.네 차례 약계(藥階, 內侍)에 들어가 담비[貂]꼬리 털과 옥귀거리[璫珥]로 관(冠)을 장식하고한 차례 백서(栢署, 御史臺)에 오르니 해태[豸獬]로 장식한 관(冠)이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다.


두 번 문병(文柄, 知貢擧)을 잡으니 난(鸞)새와 봉(鳳)새가 서로 모여 들고네 아들이 이어진 구슬처럼
rn훌륭하게 되어 호랑이와 용과 함께 다투어 달리도다.


자추(紫樞, 樞密院)의 우두머리가 되어 활보하였지만 어찌하여 황각(黃閣, 宰府)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며 나이가 쉰 살이 지났으나 어찌 머리가 누래지도록 장수하지는 못하였는가. 하늘의 도리는 넓고 아득하니 그것을 힐책할 자가 누구인가. 강물은 졸졸 흐르고 산은 우뚝 솟아 있어서이 곳에 묻히게 되었으니, 자손은 억만(億萬)으로 불어나리라.

 

-출전:『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2001)

 

환단고기에 나오는 이존비

 

충렬왕과 북경 연녀 이야기

 

임금(충렬왕)께서 연경(지금의 북경)에 있을 때, 연녀에게 매혹당하셨다. 이별할 때 연녀가 손수 연꽃 한 송이를 바치며 이렇게 말했다. "임금께서 돌아가시는 길에 만약 이 꽃이 시든 것을 보시면 이 목숨이 장차 다할 것이옵니다."

 

며칠 뒤에 꽃을 보니 초췌해지고 있었다. 임금은 연녀가 죽을까 두려워 다시 연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존비가 가서 살펴보고 오겠다고 자청하여 연녀를 찾아갔다. 연녀가 울며 시를 바치니 이러하였다.  

'연꽃 향기를 서로 주고 받으니, 처음에는 붉은 빛 아리따웠네. 꽃을 드린 지 며칠 지나니, 시든 모습 님과 같사옵니다.'

 

존비는 임금이 시를 보시면 연녀를 더욱 그리워할 것을 우려하여 연녀 대신 시를 지어 올렸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이 어리석은 사람아!  

 

수레를 멈추지 마오. 수레를 멈추지 마오.

 

이 몸은 연잎에 맺힌 이슬 같나니

 

저쪽 이쪽 둥글게 굴러다닌다오.'


임금이 시를 보고 크게 노하여 마침내 환국하셨다.

 

 이존비의 죽음

 

 

뒤에 임금이 연녀에 대한 원망을 그치지 않으시므로 존비가 아뢰었다.  

 

"신이 그때 모시고 돌아오기를 급히 서두르려고 부득이 거짓으로 시를 지어 올렸으니 바라옵건대 임금을 속인 죄에 벌을 내려 주시기를 앞드려 비옵니다."

 

임금이 노하여 관직을 빼앗고 문의에 귀양을 보내셨다.

 

태자(충선왕)와 조정 대신들이 풀어주기를 여러 번 주청하였다. 임금 역시 후회하여 다시 복직시켜 소환하셨으나, 사자가 이르기 전에 존비가 이미 숨을 거두었다. 임금은 부음을 전해 듣고 몹시 슬퍼하여 조회를 폐하셨다. 태자가 장례에 임하여 말하였다.

 

"이존비는 정직한 나라의 직신인데 어찌 이같이 요절한단 말인가?"

 

 이에 임금께서 왕례로 장사지낼 것을 명하였다. 마침내 형강 가에 있는 산 4리를 둘러서 봉하니, 지금까지 동을 왕묘동이라 부르고, 마을을 산사리라 부른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려국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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