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삼족오) - 그 찬란한 슬픔의 역사
타나토노트
2012-11-06 23:06:42 │ 조회 1343

까마귀 - 그 찬란한 슬픔의 역사







*.....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창 8:6)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왕상 17:4-6)

여호와께서 까마귀를 귀히 쓰심은 온갖 조류 중 가장 영특하고 명령 수행에 가장 충실한 새로 인정했을 것이며, 엘리야에게 먹이를 가져다 줄 정도의 충성심이 강한 사자(使者)로써의 적 자질 또한 갖췄을 것으로 본다면 과장일까?

 


이처럼 영특하고 신성하기까지 한 까마귀는 현대 과학에서도 증명되는데 몇 년전 옥스퍼드대학과 일본에서 조류의 지능지수(IQ) 테스트를 해 본 결과 먹이를 얻기 위해 도구를 직접 만들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는 사실과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등 조류 가운데 IQ가 가장 높은 새로 확인되었다.

성경 구절과 현대 과학의 사실성에 입증된 까마귀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불길한 존재로 나타났는가?

우리 속담에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 '까마귀가 울면 초상난다' 또 기억력이 나쁜 사람에게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는 등 온갖 날짐승 중 가장 불결하고 기분 나쁜 것의 상징이 되어 왔다.

그러면 고대사의 까마귀 기록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 상징적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부터 알아보자.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태양에는 흑점이 나타난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발 달린 새가 보이니, 이를 삼족오(三足烏)라 부른다.


태양의 흑점 - 옛 기록에 보면 자오지(子烏地)라 했다.

태양의 아들인 까마귀가 사는 땅으로 하늘님(하나님)의 사자(使者)라 했으며, 신조(神鳥)로 불리었다.이 삼족오는 우리 동이민족의 종교와 관련이 깊고 또한 우리 민족이 태양신을 숭배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원전 2183년에 쓰여진 산해경(山海經)에 삼족오의 기록이 있고, 회남자(淮南子 BC 202)에

일중유오위삼족오야(日中有烏謂三足烏也 - 해 가운데 까마귀가 있으니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라고 되어있다.

까마귀의 발이 세 개인 이유는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數)이므로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이 세 개라고 한(漢)나라 때의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는 풀이하고 있다.


 



까마귀는 켈트족과 게르만족, 그리스 신화, 이란의 미트라 신화, 중앙 유목민들의 타타르 신화, 바이칼 유역의 브리야트 신화 등에서 하늘과 인간 세계를 이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담당하는 신조(神鳥)였다.

일본의 기원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신라의 연오랑 세오녀(燕烏郞 細烏女) 전설에서도 까마귀는 태양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둘 다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를 쓰고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까마귀를 밝음의 상징으로 보았다는 점을 보여준다.삼국사기 기이편(紀異扁) 신라 21대 소지왕 10년의 기록에는 사람이 해야할 바를 알려 주거나 일어 날 일을 예고해 주는 영험한 새로 그려져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여서 붉은 색이나 황금 색을 한 까마귀는 태양의 상징이나 효조(孝鳥- 효성스러운 새)로, 또한 옛 날에는 행복을 안겨 주는 새로 믿었으며, 한 해의 신수를 보는데 까마귀를 사용한 예도 있다.아랍인들은 까마귀를 예조(豫兆)의 부(父)라 부르며, 오른쪽으로 나는 것을 보면 길조(吉鳥), 왼쪽으로는 흉조(凶鳥)로 믿었다.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불길한 새로 지목되고 있으나, 북유럽 신화에서는 최고의 신 오딘의 상징으로 지혜와 기억을 상징한다.그리스의 신화에서는 예언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예언의 신 아폴론과 여신 아테나의 성조(聖鳥)이기도 하다.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은 그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라는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테네의 한자 음역은 아전(雅典)으로 雅는 원래 까마귀를 뜻하는 글이고, 典은 갑골문에서 책을 뜻한다.그런가하면 일본에서는 신들의 사자(使者)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 유일의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를 일본축구협회 상징으로 삼아 그들 축구대표팀 엠블럼으로 쓰고 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삼족오를 일본이 훔쳐다 쓰는 역사적 배경을 보자. 고구려 지역에서는 오룡(五龍) 외에 까마귀도 천제(天帝)의 아들로 상징되었고, 고구려 지역에서 이주한 박혁거세나 석탈해도 천제의 아들 상징으로 까마귀 또는 알을 사용하였다.


이 신앙은 진한과 변한인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살면서 전파되어 일본서기 신무천황기에는 까마귀가 신무천황을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까마귀의 일본어는 '가라스-갈아놓은 숯처럼 검다'의 어원이니 우리 말이다.

또 현해탄(玄 검을 현 海 바다 해 灘 여울 탄)은 '검은 까마귀가 바다를 건너 여울로 갔다'이니, 우리 동이족의 한 갈래임을 입증한다. 우리가 신성시 여기는 봉황은 삼족오에서 변형된 형태이며, 또한 하늘과 인간의 매개체로 새를 신성시 여겨 민족의 상징으로 삼았다.

신라 화랑들이 머리에 장식하던 새의 깃털도 하나의 상징으로 보며, 고관대작들이 의관을 갖출 때 머리에 검은 모자를 쓰는데 이것을 오우관(烏 가마귀 오 羽 깃털 우 冠 모자 관)이라 부르는데 '까마귀 깃털 모자'로써 바로 하나님의 사자를 지칭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까마귀를 뜻하는 아(雅)는 새 추(隹)변이 까마귀 오(烏)가 있는 아(鴉)가 본 글자로써 우아(優雅)하다, 아량(雅量)를 베풀다, 아담(雅淡)하다, 고아(高雅)라, 이름을 대신한 아호(雅號) 등이 생겼으며, 옛 날 표준어를 뜻하는 아언(雅言)은 우아한 말을 뜻하고 시경(詩經)에 수록된 대아(大雅)나 소아(小雅) 등은 아름다운 음악을 말한다.

우리 민족의 맥을 살펴보면 과거 까마귀는 한님(하나님)이나 해의 신(神)을 상징하는 동물로 단군의 지팡이 머리에 까마귀를 조각하므로써 신의 사자(使者)임을 나타냈고 까마귀의 모습을 한 솟대, 정월 대보름날의 까마귀제(烏忌日) 등에서도 신조(神鳥)로써의 흔적이 보인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보면 8대 단군 서한(혹은 오사함 BC 1993) 때 삼족오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 왔는데 그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고 한다. (甲寅七年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 까마귀에 대한 고사성어로는 반포지효(反되돌릴 반, 哺먹일 포,之갈 지,孝효도할 효)의 새로 까마귀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데서 나온 말로 자식이 자란 후에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까마귀를 살신효공(殺身孝供)의 새로 불리기도 한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는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 쪽 어깨에 어머니를 올려 모시고 살갗이 다 헤어지고 어깨뼈가 드러나 골수가 보여 수미산을 백 천 번 올라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라고 했다.

고대사회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길조(吉鳥)이며 신조(神鳥) 태양새로 기록된 까마귀가 조선조에 들면서 수모를 당하고 흉조(凶鳥)로 전락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주자(朱子 1130)는 관혼상제(冠婚喪祭) 4례(四禮)를 지은 사람이다.


공자(孔子 BC 552)의 유학사상을 접목, 유교철학을 집대성한 대 학자 朱子. 그는 공자의 시경(詩經)국풍(國風)에 나오는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여긴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朱子가 까마귀를 불길하게 기록한 역사적 배경을 보자. 주자는 송(宋 960)나라 사람으로 이웃한 금(金 1115)나라가 그의 조국을 지속적으로 침략해 왔다.

그들은 조의(白+七검을 조, 衣옷 의)- 검은 옷을 입은 침략자들 이었다. 금나라는 여진족이었고 여진족의 뿌리는 대진국(발해국 699)이며, 대진국은 고구려의 후예들이었으니 우리 민족의 뿌리인 동이족이었다. 고구려인들은 국선도가 국기였으며, 이들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상위 계급 집단으로 조의선인(白+七衣仙人)으로 불리었다.

국가의 기강을 굳건히 한 이들의 맥은 동이족의 전통에 따라 조의선인이 되어 금나라에 까지 그 맥을 같이 한 것. 우리 민족은 백색과 함께 흑색 옷을 즐겨 입었는데, 조의선인이 검은 옷을 입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검은 색은 생명의 씨앗을 담고 있다. 음양오행에 보면 모든 생명은 북방의 물에서 탄생하였다고 하는데 물을 상징하는 색이 바로 검은 색이다.

명(明 1368)나라의 속국이 된 조선조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의례의 근간으로 삼아 건국 이념과 통치철학의 기본 강령으로 채택했으며, 조선조 유학자들은 이러한 주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후 明 헌종(1465) 때 구준(丘濬)이 주자의 4례(四禮)와 사상을 집대성하여 문공가례의절(文公家禮儀節) 8권을 저술하고 조선왕조는 이를 받아들여 더욱 강화시킨다.

주자가례가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준행을 강요, 보편화 시킨다. 이에 따라 가례의절이 정착되면서 국가의 제례가 왕실을 중심으로 귀족화되고 더욱 엄격히 법제화되었다.

그러나 그 폐해 또한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예(禮)에 의한 송사(訟事)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색당파의 근원이 되어 조선조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지배계급을 형성, 계급사회가 되며 반상(班常)의 위상은 더욱 강화된다. 서자(庶子)들은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혀버려 훗날 난(亂)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이재(李縡)로 이어지는 성리학자들은 가례집람(家禮輯覽)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저술을 통해 의례의식은 더욱 강화된다. 훌륭한 학자들이요, 또한 학문의 스승이었던 이들 학자들의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에 관련된 글들을 보면 이들이 과연 우리 한민족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처럼 성리학이 융성하면서 다른 일체의 사상과 종교를 이단(異端)과 사교(邪敎)로 규정하고 유교(儒敎)에서의 조상숭배 사상을 종교적 단계로 끌어 올려 제사를 매우 중요시 했다. 그리하여 유교적 제례는 사회 기강을 바로 잡는 국가적 기반이 되었고, 치국(治國)의 근본 이념이 되었으니 이것은 중국을 월등히 능가하는 것으로 장장 5백 년에 걸쳐 조선조의 절대사상, 유일사상으로 이 땅에서 꽃을 피운다.

명(明)나라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던 이지(李贄)의 말을 빌려 보자.
rn그는 명나라의 '유교전제' '문화전제'에 맞서 정신의 자유를 부르짖었는데 공자는 존경하지만 '그를 신성불가침의 우상으로 떠 받들면서 살아있는 천만 사람들의 입을 틀어 막는 주술로 삼고, 중생의 성령을 조여 죽이는 법보로 삼는다면 이는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찍이 朱子는 '하늘이 중니(仲尼 공자의 字)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지 않았다면 만고의 역사는 기나긴 밤과 같았을 것이다'라고 말하자 이탁오는 유해칭찬(贊劉諧)이란 글에서 '그러면 아마도 중니가 태어나기 전의 복희나 그 이전 성인들은 날이면 날마다 불을 밝혀 길을 다녔겠소이다' 라고 설파했다.

孔子를 신격화하는 황당함과 가소로움을 조소한 이 글을 근거로 이탁오는 성인을 비난하고, 법을 어겼다는 죄명 쓰고 76세의 나이에 이단의 낙인이 찍혀 감옥에서 스스로 머리를 찍고 죽음을 맞는다. 宋나라 이후, 朱子의 주석으로 고정된 유교 경전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학문 체계로 孔子는 신성불가침한 권위로 세상을 지배했다.

부처와 老子 보다 훨씬 파괴력을 지닌 공자를 비판하거나 경전의 진리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孔子의 사상을 이어 온 朱子가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낙인 찍으므로써 그를 추종하던 조선조 학자들의 머리에 각인되고, 사대주의 모화사상에 젖어 조선조 5백 년 세월 잠재의식 속에 흉조로 수모를 당하고 검은 색깔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 왔으며, 죽음으로 묘사되는 까마귀의 슬픈 연가는 오늘 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까마귀를 찾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쓰실 기회와 함께 하늘 민족의 정신적 고향을 찾는 길이 아닐까.

< '최후의 만찬'
rn- 6세기 로사네시스 성경필사본 삽화로 하단의 새가 까마귀로 보인다. 서종천집사 제공>

 

출처 : 우리역사교육원 한문수 교수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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