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태조 주원장은 신안 주씨로서 고려 사람이었을까?
천자봉(天子峰)

<경상남도 진해시 자은동과 웅천 1동에 걸쳐 있는 산>
높이 502m로, 시루봉(웅산:693.8m) 능선이 남쪽으로 뻗어내리며 솟은 산이다. 산기슭이 가파르고 자갈이 많아 성채나 돌산처럼 보인다. 웅장한 산세 때문에 조선 태조(이성계), 명나라 태조(주원장), 주(朱)씨, 이(李)씨, 천자(天子) 등과 관련된 전설이 여럿 전한다.
[전설 1화]
옛날 천자봉 연못의 이무기가 용이 못 되자 마을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 이에 염라대왕이 이무기에게 용대신 천자가 되라고 권하여 연못 아래 백일마을의 주(朱)씨 가문 아기로 태어났다. 이 아기가 뒷날 중국으로 건너가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전설 2화]
다른 전설도 전한다. 함경도 사람 이씨가 하인인 주씨를 데리고 명당을 찾으러 천자봉에 올랐더니 바다에서 반인반어(半人半漁)의 괴물이 나타나 바닷속에 굴이 둘 있는데 오른쪽 굴이 천자가 태어날 명당이라고 점지해 주었다. 하인 주씨가 욕심이 나서 자기 선친은 오른쪽에 묻고 주인 이씨의 유골은 왼쪽에 묻었다. 그래서 주씨 가문에서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태어났고, 이씨 가문에서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태어났다고 한다.
산행은 어은동 청룡암 옆길에서 시작한다. 40분 정도 올라 무덤과 잡목이 무성한 평지를 지나 비석 앞으로 20~30분 정도 더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남해의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정상을 지나 능선을 타고 시루봉 정상에 오른 뒤 안민고개로 하산하여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안민동, 왼쪽으로 내려가면 진해시와 창원시의 경계석이 나온다. 찾아가려면 진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어은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자료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명 태조 주원장 朱元璋(1328.10.21~1398.6.24)

<주원장의 원래 초상이라고 전해진다>
중국 명(明)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1368∼1398)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초명(初名) 흥종(興宗). 재위연호(在位年號)에 의해 홍무제(洪武帝)라고도 한다. 호주(濠州:安徽省 鳳陽縣)의 빈농 출신으로, 17세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托鉢僧)으로 지내다가 홍건적(紅巾賊)의 부장 곽자흥(郭子興)의 부하가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어 원(元)나라 강남(江南)의 거점인 난징[南京]을 점령하였다. 그뒤 각지의 군웅들을 모두 굴복시켜 명나라를 세우고 연호를 홍무(洪武)라 하였다. 동시에 북벌군을 일으켜 원나라를 몽골로 몰아내고 중국의 통일을 완성하였다. 한족(漢族)의 왕조를 회복시킴과 아울러 중앙집권적 독재체제의 확립을 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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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는 1380년 중서성(中書省)을 폐지하여 육부(六部)를 독립시키고 도찰원(都察院)·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를 설치하여 이들 기관을 황제 직속하에 두었다. 지방에도 포정사사(布政使司:行政)·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軍事)·안찰사사(按察使司:檢察)를 병립(竝立)시키고 이들을 중앙에 직결시켜 황제는 이 통치기구 위에 군림하여 절대권력을 장악하였다. 또, 24인의 황자(皇子)를 전국의 요지에 분봉(分封)하여 제실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한편, 농민통치에도 힘을 기울여 전국의 농촌에 이갑제(里甲制)를 설치하고 부역황책(賦役黃冊)과 어린도책(魚鱗圖冊)을 만들도록 하여 조세·부역의 징수를 공평히 하고 정책의 침투를 꾀하였다. 그러나 그가 꾀했던 군주독재권의 강화는 공포정치에 의해 실현되었기 때문에 만년에 고독하게 살다 병사하였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通度寺).
경남유형문화재 제252호. 현판 글씨 '원종제일대가람'은 명 태조 주원장의 친필이라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