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은 누구인가?고구려에서 분립한 조선비왕(선비)수당을 세우다
타나토노트
2012-09-26 11:40:25 │ 조회 2083

선비족은 누구인가?


흉노선우의 등장은 북부여 2세단군 모수리(모수=묵특,모돈/리=이는 이민족인 동이를 뜻하는말,동이족인 흉노계가 세운 나라들은 성을 이씨로 개성한 경우가 중국사에 여럿보인다)와 고주몽의 활동기로 대체적으로 북부여 동부여의 시기와 일치하다.=몽골초원의 지배자가 둘이다?


흉노어 알지閼氏(연씨 또는 알씨=모수리 단군의 부인 알씨) 선우=‘撐犁孤塗單于(탱리고토 또는 탕리코토선우의 약자)==>=탕구트=당(흉노의 천왕 당태종 이세민은 흉노의 천왕 대선우 한왕 유연과 궤를 같이한다,즉,고대 티벳족이라는 탕구트계이며, 흉노족이다)


탕구트는 강족(희씨족 주나라 왕비족)의 한분파인 당항족이며 당항족은 탁발선비족(당나라, 하나라)이다==>선비족이 강족의 일파이거나 선비족의 일부는 강족의 일파란 소리(희씨 주나라 혈족 연왕 모용석=모용선비)


흉노족의 왕비(알지)가 알씨를 뜻하므로 북부여 왕비족인 알씨와 신라 김씨의 일족인 알씨(박씨==>선비 을지씨=>고려 돈씨)이다(성씨고찰에서 박석김씨에 대해 썼으므로 생략~간단히 말하면 박석김은 같은 김씨,석씨는 투르크어로 돌을 뜻하는 갈에서 나옴(조선의 삼족오는 태양석을 밟고있는 삼족오고, 이때의 태양석은 제단이며 또한 삼족오가 깨치고 나온 태양알이다. 그리고 삼족오는 동방천제 제준의 아들 태양이다)


석씨=흉노 갈족 석씨(유방의 후예 흉노족 대선우 한왕 유연(역시 갈족)이 세운 한(전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후조)가 있으며, 손씨는 석씨의 일파, 오나라 손권도 남방 민계 산월,산융이라고 하나 갈족으로 판단됨,제갈공명도 원래 갈족인데 제지역에 산다고해서 제갈이란 성을 가지게 됨, (유방의 후예인 대선우 한왕 유연이 흉노이면 유방의 한나라도 갈족이 맞고, 흉노국가라는 위촉오삼국도 흉노 갈족이
rn쟁투하는게 맞는것이다.)


흉 노의 흉=선=웅=환웅천왕족이라는 의미이며,고구려 구려족의 구를 변조한 글자다.

탁발선비족 북위(北魏)의 황족으로 기록된 고구려 고씨(高氏)




선비족은 아시다시피 고조선에서 분파된 북방제민족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선비란 조선비왕이란 뜻으로서, 선비국가란 바로 조선의 비국이란 뜻이다. 지역은 현 몽골중서부에서 발원하여 점차 세력을 넓혀 하북-> 산서북서->하남으로 그리고 한족화 되어 현 섬서성 장안에 그 陣을 튼다.

단군왕검도 14세때 비왕에 올라 천황을 보필하였으며, 조선은 비왕제도로 좌현왕과 우현왕을 두었다(조선삼한관경제)
동이족의 일파인 흉노도 이 제도를 답습하여 좌현왕과 우현왕을 두었다(삼한 9주)

 

즉,선비란 조선천왕을 보필하던 자들이며 조선이지 조선과 다른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흉노가 바로 이 조선의 선이며,선=웅(중국어로 다같은 쓩, 흉하다의 흉도 중국어로 쓩)으로서 환웅천황족을 가리키는 말로서,고구려를 나타내는 구려족를 변조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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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匈奴]

BC 3세기 말부터 AD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만리장성 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기마민족(遊牧騎馬民族) 및 그들이 형성한 북몽고와 중앙아시아 일대의 국가를 일컫는 말."흉노의 후예가 회흘(回紇)ㆍ혁련(赫連)이 되고 그 별부 (別部)는 돌궐(突厥)과 철륵(鐵勒)이 되었다. 돌궐의 별부(別部)는 또 사타(沙陀)가 되고, 철륵의 별부는중고시대에 북적(北狄)에는 흉노(凶奴)와 동호(東胡) 두 종족이 있었다. 흉노의 서쪽에는 월지(月支) 등 여러 나라가 있었는데, 탕창(宕昌)ㆍ당항(黨項)은 곧 삼묘(三苗)의 후예(後裔)이며, 동호의 동쪽은 곧 말갈(靺鞨)ㆍ실위(室韋) 등 여러 나라였다. 흉노의 후예가 회흘(回紇)ㆍ혁련(赫連)이 되고 그 별부(別部)는 돌궐(突厥)과 철륵(鐵勒)이 되었다. 돌궐의 별부(別部)는 또 사타(沙陀)가 되고, 철륵의 별부는 설연타(薛延陀)가 되었다. 동호의 후예가 오환(烏桓)과 거란(契丹)이 되고, 그 지속(支屬)이 선비(鮮卑)가 되었는데, 선비의 종족이 매우 번성하여, 토곡혼(吐谷渾)은 요동 선비(遼東鮮卑), 우문(宇文)은 요동 새외 선비(遼東塞外鮮卑), 독발(禿髮)은 서선비(西鮮卑), 걸복(乞伏 서진(西秦) 선열왕(宣烈王))은 농서 선비(隴西鮮卑), 탁발(拓跋)은 별부 선비가 되었다. 토번(吐蕃)은 토곡혼의 서남쪽에 있으니, 이는 흉노의 별부인 듯하다. (이익의 성호사설)

철륵-2차고당전쟁때 당을 공격한 돌궐,철륵이 현재의 감숙등지에 있었다는 역사해설 또한 역사왜곡이며 중앙아시아의 감주가 원래의 감숙 "두산백과" 철륵의 활동영역,"바이칼호 남쪽과 중앙아시아의 카스피해,아랄해"가 활동 강역

 

고로 탕구트족인 탁발선비와 탁발선비의 나라 당나라,당항족의 하나라(서하,대하)는 대륙에 존재한게 아니다. 동남쪽으로 최대한 당겨와도 기껏 감숙성 서쪽 천산남맥 남쪽인 신장성의 서쪽 티벳과 그한참 서쪽지방일수밖에 없다.그래서 당나라와 조광윤의 송나라(돌궐사타족)는 먹을게 없어서 시장에서 인육을 판것이다.


선비족 [鮮卑族]

고대 남만주에서 몽골지방에 걸쳐 산 유목민족.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중국에 자주 침입하고, 후에 흉노(匈奴)에게 멸망된 동호(東胡)의 후예라고 하나 분명하지 않다. 선비족이 역사에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흉노의 피지배 종족으로서 1세기 초부터이고,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유목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호(東胡)족의 북쪽 일파이며 동호족의 남쪽 일파는 우환이다. 언어학적으로는 몽골어계통이라는 설이 강하지만 투르크계, 몽골계, 퉁구스계와의 혼혈이라는 설도 있다. 선비족의 흥성은 1세기 흉노족의 몰락과 때를 같이 한다. 87년과 93년에 선비족은 흉노족의 두 선우를 처단하였다. 1세기 말 북흉노가 후한(後漢)에게 격파되자, 선비는 흉노에 이어 몽골지역에서 번영하였다. 2세기 중엽 단석괴(檀石槐)가 선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국가를 세운 후 자주 후한에 침입하는 등 중국을 압박하였다.

후한이 망하고 서진(西晋)의 황족 중에 8왕의 난이 일어나자 선비족은 용병으로서 서서히 중국 내부에 이주하게 되었다. 오호십육국시대에 들어서자 흉노의 유연(劉淵)이 서진으로부터 독립하여 전조(前趙)를 세우자 선비족도 이를 따라 중국에 나라를 세웠다. 이 즈음의 선비는 여섯 부족이 각각 강하게 되었다. 각 부족은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 모용부(慕容部) (前燕, 後燕, 西燕, 南燕)
* 단부(段部)
* 우문부(宇文部) (北周)
* 흘복부(乞伏部) (西秦)
* 독발부(禿髪部) (南涼)

* 탁발부(拓跋部) (代, 北魏)


독발부는 탁발씨 (拓跋氏)에서 갈라져 나온 선비족 의 일파이다. 독발부가 세운 남량 과 탁발부 의 북위 를 가리켜 탁발량국(拓跋涼国)이라고도 칭한다.북위의 태무제 탁발도 拓 跋 燾는 元씨로 바꾸었으며 왕족인 독발부는 源씨로 바꾸도록 명했다.이 源씨에서 일본 源씨가 나오고(52 대 사가천황(嵯峨天皇/786.9.7~842.7.15-재위기간은 809.4.1-823.4.16)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미나모토(源)씨의 성을 제수), 일본 초대쇼군인 미나모토 요시나리源 賴朝가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게 된다.

 

또한 북위(원씨로 개성한 탁발씨)의 속민이던 몽골족들이 북위를 다시 일으켜 원나라를 세우게 된다. 탁발씨에게 밀린 모용씨들은 신라의 황족이 되고, 탁발씨에게 밀린 우문씨들은 북주와 수나라를 건국하는데,대하씨로 바꾼 탁발씨의 일파가 다시 당나라를 건국하고,그후 하(서하,대하를 세운 탕구트족(당항족)를 건국하게 되는 탁발씨이다.)

 

결국,원래 이들은 고구려 고씨, 백제 부여씨, 한나라 유방의 경우처럼 원래 위씨들의 후예로써 위(북위)를 건국하는것이며, 다시 이들이 원씨로 개성한후 그 후예가 원나라를 세우게 된다. 따라서 몽골족(선비계)이라는 징기스칸도 위씨의 후예이며, 그의 조상인 신라김씨=모용씨도 위씨의 후예가 맞다.


선비족의 일파인 모용씨(신라김씨)는 희씨 황제헌원족 주나라의 혈족인 연나라 왕족이므로 따라서 위씨는 희씨와 같은 족속이고, 선비족과 황제헌원족은 같은 선비족인것이다. 

 

수당과 신라가 같은 선비족이듯이. 신라의 선조국 진나라가 서융(선비계)계인데, 동이東夷의 일원인 강융姜戎 즉 西戎은 견웅이라고도 하는데(제견 반고가한)주나라의 왕비는 주왕실의 조상인 후직(고구려 선조 제곡고신의 아들)때부터 줄곧 강융(강족)이 왕비였다. 결국, 서주西周 왕실王室도 모계혈족이 다 강융이었으므로 그들이 강융姜戎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됩니다. (고대의 왕실은 대대로 세력이 강한 부족중에서 왕비를 받아들이는 전통이 있으므로, 결론은 같은 족속인데,만년노 한족들이 돌려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 모용부로부터 나와 서천한 토욕혼(吐谷渾.티벳계 민족,당나라와 같은 탁발선비 당항(탕구트도 티벳계민족, 당장경의 당도 티벳을 뜻하므로 당나라도 티벳지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도 선비계인데 현지의 강인(羌人)도 융합하였다.

 

강인은 강족을 뜻한다(현재 학계에선 강족을 페르시아계 소그드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족은 중앙아역사에서 현 우즈벡이 주거지라 하므로, 주나라를 건국한 강태공이나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강족의 활동지는 바로 중앙아이다.(중국역사가 한종족을 둘로 가른듯한 냄새가 나는게 주나라와 강족, 흉노 갈족과 한, 탁발선비와 당,돌궐 사타족과 조광윤의 송(송의 부활을 외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주원장이 돌궐사타족이 아닌지 연구해봐야한다고 봄,고구려나 백제도 돌궐계국가라고 한다. 즉, 흉노란 얘기고, 신라는 선비족(모용)이 중심이 된 국가로서,신라를 이은 고려나 조선은 신라의 지배층(구유신계급==>사대부==>양반(무신과 문신=고로 원래 무신에서 나온 특수집단이 문신. 이들은 신라의 모용선비족이 중심이 된 지배계층의 후예=선비족이 신라이후 주 지배계층이 되었다는 반증이 된다.)

탁발부의 북위(北魏)는 439년에 화북을 통일하여 이 이후는 남북조 시대가 되었다. 그 후 수의 양견(楊堅)에 의하여 중국이 되었으나 양견은 우문부가 세운 북주(北周)의 외척이다. 동일하게 선비족시기 다얀씨(탁발씨==>개성 大野氏, 대야씨)인 북주(北周)의 귀족이었던 당의 이연(李淵)도 또 선비 출신이다.

 


흉노계는 처음 나라를 세우면 자신의 이름을 연이라고 하거나,국가명을 연으로 하고, 또는 대선우 한왕이란 의미에서 한(한은 지역명으로 주로 한수인근을 의미하거나 한중을 의미한다, 유연의 한나라를 전조라고 한다,유방의 후예이다)이라고 하거나 흉노 선우의 성씨인 유씨를 썼으며, 이민족을 뜻하는 이씨를 쓰기도한다.


묵돌선우와 모수리단군의 유사성?

 

두는 제사지내는것을 의미하고 만은 해를 의미하니 두만은 천왕랑,천군이라는 의미이다. 북부여 1세단군 해모수는 천왕랑이다. 흉노어로 티무르이다(또는 철륵) 頭曼은 터키어, 몽골어, 만주어 등에서 일만(一萬또는 만장(萬長)을 의미하는 ‘tumen’이 그 어원이다. Tumen은 頭曼, 頭滿, 圖們, 土門 등의 한자를 차음하였다,


고구려의 동명성왕(東明聖王)과 부여의 동명왕(東明王)의 동명(東明)은 몽골계어 Tumen , 萬長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Tumen’은 만주어 ‘Tumen()’, 순수 우리말인 '즈믄'()과 같은 어원인 것 같다. 이는 흉노의 頭曼과도 같은 의미이다.

한편, 추모(鄒牟)는 몽골의 후예인 티무르의 Timur’와 같은 계열일 수도 있다. ‘Timur’는 터어키계어로 ‘(쇠)’ 를 의미한다. 고국원왕(故國原王)의 이름이 ‘사유(斯由)’ 또는 ‘쇠(釗)’이었던 것으로 짐작하면, 추모왕(鄒牟王)은 일명 '쇠왕' 또는 철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武->wu, 無->wu, mo, 巫->wu]처럼 오늘날 한국어 '무(mu)' 발음의 많은 경우는 중국어로는 '우(wu)'가 된다(즉 m>w).


 치우(蚩尤)’ 즉, '치무'(티무)도 ‘Timur(鐵)’와 같은 의미인 듯 하다. 즉,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 는 '치', '티' 등을 우리말 '쇠'(고형물:시), 무(Mur)를 '머리'로 볼 수도 있다.


선 우는 유목국가의 군주를 뜻하는데, ‘撐犁孤塗單(탱리고토 또는 탕리코토선우’)의 약어이다. 몽골어계에서 撐犁(탕리 또는 탱리)는 하늘을 의미하는 텐구리’(Tengri의 취음)로 단군(檀君)의 원어로 추측된다. 그리고 孤塗(고토 또는 코토)도 몽골어계에서 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이 변방의 여러 부족을 유린 또는 복속시킬 때 내린 봉호(封号)로서 사용되기도 했다. 撐犁孤塗는 ‘Tangut(탕구트)’의 취음으로 6-14세기 초 주로 중국 서북부에서 활동한 티베트계의 유목민족으로 일부는 서하(西夏: 1227년 칭키즈칸에 의해 멸망)을 세우기도 했다.

 

單于(Shanyu)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것은 흉노(匈奴)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헌상으로는 『史記』의 「匈奴列傳」에 頭曼單于(冒頓單于의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이 처음이다.


당항족을 탕구트라고 하며,당항족이 세운 나라는 하(서하,대하)가 있다,이들은 당나라와 같은 탁발선비족으로 당황족 이씨처럼,이들도 이씨로 바꿨다,이는 이민족인 동이를 뜻하는 글자이다.나무 목자에 아들자라고 하는데,이때의 나무는 신단수이며 황제를 비롯한 3황5제가 제위에 오르면 입는다는 숙신(조선)의 신목으로 만든 옷이며,천자의 권리를 의미한다.

 


당항족은 강족의 한분파이다(알씨의 후손이기도 하고,강태공의 후손이라는 소리~)결론은 선비족은 웅녀족인 알씨족 후예이다.

 


천녀인 웅녀는 신궁의 궁주가 되고,삼한의 신녀가 되었으며, 무사집단은 이를 수호하는 특수집단이 되는데 이를 선비라 한다, 이들이 수장이 조선비왕이 되는 것이다, 연개소문이 연태조(연왕)아들로서 조의선인의 지도자자리인 국선으로 대대로 대막리지의 자리에 오르는것과 같은 이치인것이다.신궁의 궁주인 웅녀(촉과 한중의 궁주)를 일컬어 원화 또는 중화라 하는것이다. 웅녀는 알씨이다, 이들을 수호하는 무사무리, 알씨족이 바로 선비이다.


묵돌,묵돈,묵특이라고 불리우는 묵돌선우는 두만선우의 아들로서 頭曼單于가 후비 閼氏(연씨 또는 알씨라고 하며 흉노 언어로 황후를 지칭함=흉노어 알지)에서 태어난 아들을 後嗣(후사)로 삼기 위해 적대관계에 있던 月氏(월씨) 부족으로 화평을 명목으로 하여 冒頓을 인질로 보내놓고 곧바로 月氏를 공격해서 冒頓을 죽게 하였다. 그러나 冒頓은 용케 살아남아 아버지 頭曼單于에게로 돌아와 좌현왕이 됐다가. 두 만선우를 죽이고 선우자리를 찬탈한 자인데~한고조 유방은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측근인 한왕 신을 북방에 배치하고 흉노 토벌을 명한다. 하지만 한왕 신은 흉노 토벌이 어렵다 생각하여 화평을 시도했고, 이후 고조가 이를 책망하자 흉노로 투항해 버렸다.  


 

한왕 신이 투항하자 묵돌은 그의 인도를 받아 대(代)의 땅을 공격해 들어갔고, 현재의 산서성 동쪽의 평성에 이르렀다. 한 고조 역시 대군을 일으켜 이에 맞섰으나, 묵돌은 이를 무찌르고, 한나라 군대를 백등산에 몰아 넣어 7일간 포위하였다. 이후 한 고조는 묵돌의 연지(선우의 왕비)에게 선물을 주어 포위를 풀고 장안으 로 도망쳤다.한 고조가 죽고, 효혜제가 즉위하자. 묵돌은 고조의 왕비인 여태후에게 "나도 독신이고 그대도 독신이니 잘해보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희롱했다.


모수리단군의 모수는 묵돌, 묵돈, 묵특이라고도 하는데,해모수의 해를 쓰지 않고, 모수만 이어받아 모수리라고 한다, 북부여 3세단군부터는 고씨성을 쓴다. 고주몽은 북부여 7세 단군이다.

 

여기서 모수(묵특,묵돈)은 다른곳으로 이어진것이 아닌가 한다.모수리단군이 백산에서 한왕 유방을 패배시켜 죽이려하자 유방의 신하가 꾀를 써서 모수리단군의 부인인 신궁의 궁주인 알씨를 움직여 알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흉노의 흉=선=웅=환웅천왕족이라는 의미이며, 고구려 구려족의 구를 변조한 글자라고 볼 수 있다.


교활한 만년노예 한족이 조선9족을 분할해 만든게 소수민족이다.단석괴는 단군조선의 단군왕검의 혈족,단석괴가 통일한 선비족이 분열하여 선비,몽골,거란으로 갈리게 된다고 한다.

 


고구려는 고씨의 구려라는 말로

1,고씨의 구려국
2,고씨의 구려(9려=9이=동이제족=조선9족)==>구려족이 고조선의 조선9족을 다물(회복)했기 때문

句=勾(陈星)= 북극성북극성이 천문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안해도 알것이다. 즉,해를 숭상하는 조선고시씨의 방계혈족인 황제(화서씨)의 직계후손인 전욱고양(고이족=구려족)의 직계혈손 고주몽이 구려국(bc2240)을 승계하며 무려 2200여년이 지나 고구려를 건국(bc37)하게 된다.


결론은,부여족의 일파인 고주몽이 부여족과 고이족을 통합한것이 고구려이다.
여기서 구려와 고구려를 의미하는 句=勾 라는 글자를 유의깊게 살펴보아야한다. 만년노예 한족이 자신들이 내세울만한 조상과 역사가 없어서, 고구려황실인 고주몽가계의 직계조상인 전욱고양과 황제를 한족의 조상으로 날조하다보니, 고구려와 고구려의 시원인 구려국의 실제역사가 걸리게 되어 句(勾)==>匈로 흉할흉(凶)자를 넣어 구려국과 고구려의 백성을 분할해 흉(=슝=슌=선(조선의 선)족을 만들어내게 된다,이들은 모두 중국어로 xiong이거나 원래 고어발음이 흉또는 슝이다(실제는 부여족일것으로 사료된다. 흉족을 비하해서 奴를 붙여 흉노족으로,몽족을 비하해서 몽고족으로 하듯이 말이다.)

 

고구려는 돌궐계(퉁구스족)국가라고한다,백제도 마찬가지다. 즉,돌궐족은 자신들이 흉노의 일파라 말하고 있다.

 

그럼,결론은 선족(슌족=흉족=흉노족)이라 칭하는 조선-고구려(선족=조선9족)가 분립하여 돌궐흉노와 선비흉노가 된것이다,선비흉노가 분할하여 거란-말갈-여진-몽고-만주족이 된 것이다.

 

전욱고양의 후손이 요임금이고,요임금의 직계가 고구려의 고주몽이고, 제곡고신의 후손이 순임금이고,순임금의 직계가 진(진한)시황의 진(과 6국)이고, 진과 6국의 후손이 6국(6촌)연맹의 신라로서,신라도 선비족이고,진도 선비족이다.

 

북위사에 보면, 선비족은 황제의 후손이다.(한족은 황제의 후손이 아니다.) 따라서 선비족은 고조선의 선족=조선(=조선9족)이고,고구려에서 분가한 족속이며. 또한 신라의 방계족속이다. 선비족에서 여진-몽고-만주가 나온 전욱고양은 황제의 직계후손이고, 제곡고신은 소호의 후손으로,소호는 황제의 후손이다. (일설에는 소호는 조선고시씨의 직계후손인 소호금천이고, 황제는 조선고시씨의 방계후손이라고 한다. 역사상 소호금천이 황제보다 먼저 존재했고, 소호계(제곡고신계)와 소전계열인 전욱고양(황제계)의 싸움이 주나라 이전의 역사이므로 모든 혈통계보를 황제로 통합해놓은 역사는 만년노예한족의 날조에 불과할 것이다.)

대륙사를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선비족의 중국통일과 삼한중의 하나인 선비족 신라의 삼한통일이 그궤를 같이하며 또한 중국통일시 등장한 선비족의 역사가 백제와 신라의 흥망성쇠와 거의 같으며 민족 또한 같다. 고구려가 돌궐흉노계이면,백제도 돌궐흉노계인데 흉노족의 흥망성쇠와 돌궐, 선비족의 흥망성쇠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흥망성쇄와 그궤를 같이할뿐만 아니라중국을 통일한 선비족역사와 삼한을 통일한 선비족 신라의 역사가 어쩜 이리도 같을까? 고구려 후반기 등장하는 국가는 죄다 돌궐계와 선비계국가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위, 촉, 오의 지명들이 대부분 백제의 지명이다. 또한,백제의 공격으로 북위를 멸망으로 몰고갔으며, 북위의 멸망으로 수나라가 등장한다는 것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신라는 처음엔 고구려와 백제의 부속국가였으며, 백제와 고구려는 한성(한나라=백제한성)쟁탈전이 심했으며, 고구려는 명사에서 보듯,한을 완전히 병합한 나라로서, 아시아의 패자였던 국가이다

 

즉,백제의 땅에서 벌어진 일이 한(고구려에 복속된 한나라 그리고,고구려에서 분가한 백제)-위촉오삼국-위진남북조-수-당이다.

고구려말기 역사를 보면, 당항성을 공략한 백제(당항성=당주=당나라?)와 이를 다시 강탈한 신라=>백제멸망과 고구려멸망으로 이어지는데, 수당은 선비족국가(선비흉노계)이고, 신라도 선비족국가이다. 고구려는 돌궐흉노계이다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승리하고 난후 선비족의 역사는 사라지면서 한족들이 말하길, 당나라는 한족사이고, 선비족은 한족에 융화되었다고 한다.

만약,현중국사에서 말하는 대로 당나라가 대륙의 주인이라면 자신들 민족이 사라지도록 한족화를 진행하고, 노예에 불과한 하잘것없는 집단들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려하겠는가?

이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지배민족이 피지배민족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확연히 극심한 차별은 금지하거나 피지배민족을 동화시키려고 수단을 강구하긴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에 속하며, 또한 반드시 그에 수반하여 타민족의 구심점이 되는 인사는 제거하고,구심점이 되는 문화는 철저히 제거한다.

선비족간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신라가 대륙을 차지하고, 천년왕조 신라의 찬란한 문화가 선비족(=실은 선족=흉(노)=조선9족=
동이족)의 문화를 대표했으며, 당나라는 신라제국내 일개소국에 불과하여 당나라의 선비족은 신라선비족의 문화에 압도되어 흡수되었는데. (신라(황제의 후손인 소호금천의 직계)와 당(황제를 조상으로 함)은 같은 조상을 둔 같은 선비족혈족이다) 만년노예 한족이 또 역사갖고 농간질해서 선비족은 한족에 융화되어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다. (원래 한족은 환국조선=환국=한국의 한민족이다.)

북위가 망한후 이 나라의 선비족 일파들이 바로 60여년후에 그들의 長子이자 고조선의 강력한 후계자였던 고구려와 백제를 먹어버린 隋와 唐나라가 되는것이다.
이 얼마나 역사의 아이러니 인가! 北魏는 탁발씨가 나라를 일으켜 315년부터 530년까지 비교적 장수한 북방왕조중에 속한다 .

고구려인의 북위에서의 영향력



『위서』 <태조기(太祖紀)>에 의하면 398년에 북위의 수도인 업( -하북성 남부지방)에 고구려인 등 36만과 기술자ㆍ예술가 10만 명이 수도에 가득 차 있다는 기록이 있다. 혹자는 이것을 광개토대왕 8년에 고구려군이 이곳까지 쳐들어간 증거라고도 하고, 북위가 고구려인을 잡아간 것이라고 이야기도 하나, 단편적인 기록이라 입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북위가 이곳에서 머물지 못하고 곧 수도를 만리장성 인근의 평성(平城)으로 옮긴 것으로 볼 때, 고구려인이 북위의 압력세력이었지 끌려온 자들은 아니라고 보인다. 하지만 북위에 고구려 출신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료이기는 하다.

 


5세기 후반, 북위의 정권을 장악한 자는 고조(高肇)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북위 고조(高祖)의 여동생인 고평공주와 혼인하여 상서공(尙書公)이란 높은 요직에 오르고, 여동생을 고조의 황후로 만들었다. 여동생은 문소태후(文昭太后)가 되어 세종(499∼515년)을 낳았다. 그의 조카딸은 세종의 황후(宣武皇后)가 되기도 하며, 조카 맹(猛)은 장락공주와 혼인함으로써 북위 황실과 3중의 혼인관계를 맺게 되었다. 고조는 외척으로 족당(族黨)까지 형성하는 최고의 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이렇듯 권세를 누린 고조의 집안은 발해(渤海)고씨라고 알려져 있다. 그의 5세조 고고(高顧)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에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고 한다. 그의 가문은 고구려에서 계속 살았고, 고조와 문소태후도 고구려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가 470년대에 고구려에서 북위로 돌아오자 곧 여위장군에 봉해지고, 여동생을 황후로 들여보내는 놀라운 출세를 하게 된다.

 


rn『위서』를 비롯한 기록에는 그가 후한시절의 명문집안이었던 발해고씨였기 때문에 우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발해고씨의 대부분이 100년 이상을 요동지방과 고구려에서 망명생활을 했다가 북위시절에 하나둘씩 망명한 자들이고 보면, 백년 전의 명문집안 출신이란 이유로 그가 귀국하자마자 그렇게 쉽게 권력의 핵심에 오를 수는 없다고 본다. 고구려에서의 행적은 전혀 기록되지 않고 단지 이름만 기록된, 중국에서 고구려로 건너간 고조의 선조들을 한족으로 보는 것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의 선조들이 160년 간이나 고구려에서 생활했다면 완전히 고구려인이 되었을 것이지, 여전히 한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북위가 척발선비족의 국가인 이상, 한족이기 때문에 환영받았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런데, 그의 동생 고현(高顯)은 고구려대중정(大中正)이란 고구려 출신 인물들을 천거하는 벼슬을 받았다. 그것은 당시 북위에 고구려에서 온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고조의 가문이 고구려인을 세력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자리를 고조의 집안에서 맡게 된 것은 그들이 고구려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조와 친척이 되는 고잠(高潛)은 고구려에서 돌아오자 곧 북위의 부마도위(왕의 사위)가 되었고, 고윤(高允)은 북위의 대표적인 학자이자정치가로 대접받았다.

 

남북조시대 북조에는 고구려인으로서 북연을 세운 고운(高雲)을 비롯하여 북주(北周)에서 10주(州)의 군사권을 지니기도 했던 고림(高琳) 등 출세한 고구려인이 많았다.

 

북연을 건국한 고구려인 고운

 

고운의 할아버지 고화는 고구려에서 갈라진 일파로 자칭 고양씨의 후예라 하여 성씨를 고씨로 했다. 앞서 모용보가 태자로 있을 때 고운은 무예직으로 태자를 가까이 모시고 있었는데 모용보가 고운을 양자로 삼고 모용씨라는 성을 주었다.

우리가 태왕사신기에서 보았던 바로 그 고구려인 고운이다,주나라 왕족 희씨의 일족으로 춘추전국의 연나라왕족(주무왕의 동생 소공석=연왕 모용석)인 모용선비족의 후예가 세운 5호16국의 연나라(후연)의 왕족 모용보의 양자 모용운(고운)이 세웠다고 하기도 하고,그의 부장 풍발(한족이라고 우기나 실은 흉노족)이 세웠다고도 하나,공통점은 모용운이 바로 고구려인 고운이고,그를 살해한 고운의 총신 이반과 도인을 풍발이 처단하고 자리를 차지하였으며,그의 동생 풍홍이 제위를 이은뒤 북위의 침입을 받아 고구려로 도망갔다가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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