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창세신화
타나토노트
2012-06-11 20:19:54 │ 조회 809

미륵님, 구리기둥으로 하늘과 땅을 갈라놓다


한국에는 창세신화가 있는가? 지난 몇 년 동안 적지 않게 들었던 질문이다. 희랍 신화의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한국의 창세신화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오롯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창세신화는 함경도, 평안도, 경기도, 동해안, 제주도 등지에서 무가(巫歌)의 형태로 전승된다. 천지개벽과 인간 창조, 인간세상을 차지하기 위한 신들의 경쟁 등 다채로운 내용이 그 속에 전한다. 적지 않은 창세신화의 자료 가운데 가장 이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했다고 평가받는 함흥지역 무녀(巫女) 김쌍돌이(金雙石伊)의 노래(巫歌)를 통해 창세의 시절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미륵님이 탄생한 즉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여
하늘은 북개꼭지처럼 도드라지고
땅은 네 귀퉁이에 구리 기동을 세우고···



창세신화는 천지의 개벽에서 비롯한다. 하늘과 땅이 생겨날 적에 '미륵님'1)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니 미륵님은 천지의 생성과 더불어 존재했던 창세의 주역신이 되는 셈이다. 그 시절 하늘과 땅이 들어붙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하늘이 점점 가마솥 뚜껑의 손잡이처럼 볼록해졌다고 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비로소 틈이 생긴 것이다. 가마솥 뚜껑 손잡이처럼 볼록해졌으니 네 귀퉁이 부분에 틈새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 때 미륵님이 구리 기둥 넷을 가지고 땅의 네 귀퉁이마다 받쳐 세워 놓으니 하늘과 땅이 완전하게 분리되었다고 했다. 구리 기둥 넷으로 땅과 하늘을 나누었으니 흔히 말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곧 하늘은 둥근 형상을, 땅은 네모난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고대 신화의 구전자인 무녀.



하늘과 땅이 분리되었으니 그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그렇다. 당연히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어찌 어찌 되었다고 하는 내력이 등장해야 자연스럽다.



그때는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요

달 하나 떼어서 북두칠성(北斗七星), 남두칠성(南斗七星) 마련하고

해 하나 떼어서 큰 별을 마련하고

잔 별은 백성의 직성(直星)별을 마련하고

큰 별은 임금과 대신(大臣)별로 마련하고



그 시절에는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었다. 해와 달을 하나씩 조정해야 오늘날 인간세상의 이치와 같아지는 까닭에 달 하나를 떼어내어 칠성별을 만들고 해 하나를 떼어내어 임금과 대신, 그리고 백성의 별을 만들었다고 했으니, 뭇 별들은 해와 달에서 비롯했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해와 달을 하나씩 조정해야 하는 연유가 있다. 제주도 심방 - 즉, 무당 - 박봉춘의 노래에서는 "해가 둘이어서 사람들이 뜨거워 살 수 없고 달이 둘이어서 추워 죽으니" 해와 달의 수를 조정해야 한단다.2) 낮에 해가 둘이면 사람이 뜨거워서 못 살고, 밤에 달이 둘이면 추워 살 수 없다는 것이니 응당 해와 달을 하나씩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해와 달이 여럿이어서 하나로 만들어야 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민족의 창세신화에서 전승되지만, 해와 달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그것으로 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는 그 해와 달을 제석궁3)이나 명도궁4) 같은 곳에 걸어두기도 하고5) 동해 용궁에 두었다는 경우6)도 있으니 특별한 발상을 엿보게 된다.





일월도(日月圖)를 상징하는 청동거울 '명두'.

 

하늘과 땅이 분리되고 일월성신이 생겨난 내력을 알아보니 불현듯 무당들이 지니고 있는 무구(巫具) 가운데 신경(神鏡)이라 부르는 청동거울이 떠오른다. 이것을 다른 말로 '곤을' 또는 '명도(明圖)' - 대부분 일월도(日月圖)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 즉 일(日)과 월(月)의 합자인 '명(明)'이 붙었다고 할 수 있다 - 라 하기도 하는데, 그 뒷면에는 해와 달, 칠성(七星) 따위의 소박한 문양이나 '일월대명두(日月大明斗)'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명도의 뒷면은 일월천(日月天)의 문양을 새겨 놓아 천체(天體)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의 특징은 주로 천궁경(天穹鏡)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볼록 거울의 형상을 하는 것은 그 표면으로 일월을 나타내고 그 뒷면으로 하늘의 궁륭(穹㝫)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이 자생적 인식인지 외부의 영향에 의한 것이지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한다. 다만 무당들이 사용하는 곤을 혹은 명도가 이러한 천체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하늘이 가마솥 뚜껑처럼 볼록하게 도드라졌다고 하고, 그 둥근 하늘에 일월성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발상은 곤을의 형상과도 흡사하니 무속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인식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창조한 주역신인 미륵님은 대단한 과업을 이루었으니, 그에 걸 맞는 특별한 형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륵님이 입을 옷을 짓는데 그 시절에는 옷감이 없어서 이 산 저 산으로 뻗어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칡을 캐어 껍질을 벗겨내고 삶아낸 후 하늘 아래에 베틀을 걸고 구름에 잉앗대를 걸어 장삼(長衫)을 만들어 내니 그 크기가 대단하다. 등만 덮을 만하게 걸쳐 입는 홑옷이 전필(全匹)이나 되고, 소매만 해도 반 필이며, 섶의 크기만 다섯 자요, 옷깃만 해도 세 자나 된다. 또한 머리에 쓰는 고깔은 석 자하고도 세 치를 더 해야 턱 아래에 겨우 내려올 만하다고 했으니 미륵님의 거인신적 면모가 완연하다.


불과 물을 찾아 나서다


미륵님이 인간세상을 그럭저럭 만들어 놓고 옷도 해 입었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미륵님 시절에는 불(火)이 없어 음식을 날 것으로 먹었기에 불의 근본, 물의 근본을 찾아야 했다. 풀메뚜기를 잡아다가 형틀에 올려놓고 무릎 뼈를 세 차례 때리며 불의 근본, 물의 근본을 탐문하니 풀메뚜기가 풀개구리에게 가보란다. 풀개구리 잡아다가 똑같이 치니 생쥐에게 가보란다. 생쥐를 잡아다가 똑같이 치니 대가를 달란다. 미륵님이 천하의 뒤주를 차지하라 하니 그제야 금덩산7)에 들어가 한 손에 차돌 들고 한 손에 쇠붙이 들고 툭툭 치니 불이 생기더라 하고, 소하산8)에 들어가면 샘물이 솔솔 나오는데 물의 근본이라 했다.



쥐가 불의 근원을 알았다고 하는 것은 앞서 말한 부단하고도 무분별한 움직임의 속성과 여기에서 파생된 훔쳐오기의 속성이 결부되어 나타난 현상이겠다. 개구리는 달의 동물로 물을 의미하니 오행사상(五行思想)에 비추어도 음(陰)에 해당하여 여성을 뜻하고, 쥐는 불을 의미하니 오행 중에 양(陽)에 해당하여 남성을 뜻한다. 여기서 물과 불의 근본이 각각 개구리와 쥐로 인지되지 않고, 쥐가 물과 불의 근본을 미륵님에게 알려주었다고 하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생식에서 화식으로 전환하는 음식의 발전과정은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발전의 단계를 의미한다. 개구리와 쥐가 각각 물과 불의 근본을 양분하는 대립항(對立項)으로 구분되지 않는 현상은 기후와 관련하여 우기(雨期)와 건기(乾期)의 대립이 불필요한 상황임을 암시한다. 우기와 건기가 대립적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은 이 서사시에서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 기후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터이다. 채집과 수렵 혹은 농경의 경제적 기반이 모호한 상태에서 자연의 변화에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복종하는 삶의 양태를 감지할 수 있을 듯하다.


금벌레·은벌레에서 인류가 시작되다


인간세상을 이렇게 갖추었으나 인간이 없으면 인간세상이 아닐 터, 인간이 생겨난 내력을 노래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미륵님이 한 손에 금쟁반을, 다른 한 손에 은쟁반을 들고 하늘에 기원하자, 금쟁반에 금벌레 다섯이 떨어지고 은쟁반에 은벌레 다섯이 떨어졌다. 금벌레는 점점 자라서 남자가 되고 은벌레는 점점 자라서 여자가 되어 인류의 시조가 되었다. 그 다섯은 각기 짝을 맺어 부부가 되었으니 우리 민족은 벌레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 많고도 많은 신성한 동물은 다 어디가고 하필이면 벌레란 말인가. 어찌 보면 벌레가 점점 자라서 인간이 되었으니 무슨 진화론의 한 부분을 보는 듯도 하다. 여기서 미륵님이 불과 물의 근본을 알아내는 과정을 노래한 대목, 곧 메뚜기에서 개구리로, 다시 생쥐로 이어지는 꼴이 마치 곤충에서 양서류를 거쳐 포유류로 가는 형국인데, 벌레가 자라서 인간이 되었다고 한 설정과 아울러 생각해보면, 저 김쌍돌이 무녀가 혹시 다윈의 진화론 같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금벌레·은벌레가 자연적으로 인간이 된 게 아니라, 미륵님의 양손에 들린 금쟁반·은쟁반에 떨어져서 남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미륵에 의해 벌레가 인간으로 바뀌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진화론적 사고와 창조론적 사고가 겹쳐진 양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륵이 전지전능한 인간의 창조주는 아니다. 하늘에 기원하여 금벌레와 은벌레를 얻었다고 했기 때문에, 미륵의 상위에 천신이 있다는 논리가 된다. 그런데 미륵이 벌레를 인간으로 화생시켰다면 인간 창조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벌레가 자연적으로 인간이 되었다고 하기는 어렵고 미륵의 기원에 의해 금벌레·은벌레가 인간으로 화생하였기에, 벌레가 자라는 과정에 미륵이 인간 창조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진화론적 사고란 창조주의 개입 없이 자연적으로 벌레가 인간으로 진화한 경우를 지칭하므로 이 신화의 내용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하등한 벌레가 자라서 고등한 인간이 되었으니 둘 사이에는 무분별한 상황에서 차별적인 상황이 되었다고 하는, 구별 짓기의 과정이 일단 개입되어 있다고 하겠다. 인간으로 화생하여 다시 분별이 생겨나 남녀가 되고 다시 분별이 생겨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근원적인 동질성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금쟁반·은쟁반은 해와 달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보면, 금벌레·은벌레는 곧 해벌레·달벌레가 된다. 벌레가 이미 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인간세상의 하찮은 벌레가 아니라 신이(神異)한 성격을 가진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벌레와 같은 형상을 지닌 신이한 존재가 하강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설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해와 달에 관련이 있으면서 인간세상의 벌레와 상통할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벌레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 거듭 추론하는 데에 동북아시아의 고대 민족의 관념이 활용될 수 있을 듯하다.



서기 6~8세기에 남러시아와 유럽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였던 유목민족인 아바스(Avars)는 유연(柔然)의 후예로 인정되는 민족이다. 그런데 돌궐이나 페르시아는 아바스를 케름(Kerm), 곧 벌레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관심을 끈다. 특히 하우시히(H.W.Haussig)라는 학자는 '벌레'라는 말을 늑대의 은어로 간주하여 '연연(蠕蠕)'이 늑대토템을 지닌 유연을 빗대는 말이라고 해석한다. 서기 576년 사산(Sasan)조 페르시아의 견제를 위해 동로마에서 서돌궐로 파견된 왈렌티노스(Oualentinos)의 보고서에는, 늑대의 토템을 가지고 있는 서돌궐의 달두가한(達頭可汗) - 타르두스 카간(Tardus Khagan) - 의 아우가 유연을 벌레라고 호칭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점을 미루어보면 그 '벌레'는 늑대가 아닌 다른 동물, 곧 뱀을 상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9)


이 점에 있어서 쉐더(Schaeder)는 오늘날 동몽골 지역의 샤머니즘과 연관시켜 볼 때 매우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몽골인들은 뱀을 '아브르가'라 부르며 지방신이나 용왕을 대표하는 성물로 간주하여 죽이지 않는 습속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금벌레·은벌레가 어떤 성스러운 동물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동물의 원래적 의미가 전승의 과정에서 잊혀짐으로써 오늘날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벌레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우리네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금벌레와 은벌레가 사신류(蛇神類) 혹은 용사류(龍蛇類) 같은 신비스러운 동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다시 신화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다섯 쌍의 부부가 있어 인간이 태어났으니 이 땅의 사람들은 다섯 조상 혹은 다섯 개의 족원(族源)에게서 나온 셈이 된다. 그런데 고대 한반도의 삼국 가운데 다섯이라는 숫자를 특별하게 인식한 나라는 고구려였다. 건국시조인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지상에 강림할 때 타고 왔던 수레를 오룡거(五龍車)라 칭했던 것과, 고구려의 연맹체가 오부(五部)였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다섯 쌍의 금벌레·은벌레가 다섯 쌍의 용, 즉 오룡거와 의미상으로 통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이렇게 보면 김쌍돌이본 「창세가」는 고구려의 신화의식과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늘에서 내려온 한 쌍의 벌레가 부부가 되어 인류를 퍼뜨렸다고 하지 않고 다섯 쌍의 부부에게서 다시 인류가 비롯했다고 하는 설정은, 이 땅의 사람들이 하늘의 후손이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다섯 시조를 가졌다고 하는, 동질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는 천신의 후예인 주몽이 세운 나라여서 그 백성들은 천신(天神)의 후손들이다. 그러면서 각기 다른 다섯 연맹이 있었으므로 서로 다른 시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김쌍돌이가 구연한 「창세신화」는 고구려의 옛 영토인 함흥지역에서 전승되는 노래라고 하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이기만 한 것일까.


신들이 다투다


민간신앙의 채취를 강하게 풍기는 미륵부처.



이리하여 미륵님이 다스리던 세월은 태평하였는데, 석가(釋迦)님이 내려와서 미륵님의 인간 세상을 빼앗고자 했다.



(미륵님이 다스리던)인간 세월에는 태평하고, 그랬는데, 석가(釋迦)님이 내려오셔서,

이 세월을 앗아 뺏고자 마련하여(작정하여), 미륵님의 말씀이,

아직은 내 세월이지, 너 세월은 못된다.

석가님의 말씀이, 미륵님 세월은 다 갔다, 이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

미륵님의 말씀이, 너 내 세월을 앗겠거든, 너와 나와 내기 시행하자.

미륵님과 석가님이 대결을 벌인다.

미륵님의 말씀이, 너와 나와 내기 시행하자,

더럽고 축축한 석가야,

그러거든, 동해 중에 금병에 금줄 달고, 석가님은 은병에 은줄 달고,

석가님의 말씀이 내 병에 줄이 끊어지면 너 세월이 되고,

너 병에 줄이 끊어지면 너 세월 아직 아니라.

동해 중에 석가 줄이 끊어졌다.



첫 번째 시합은 동해 한 가운데에 미륵님이 금병에, 석가님이 은병에 각각 줄을 매달아 넣고서는 끊어지지 않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었다. 미륵과 석가의 대결이 함축하는 신화적 의미는 동해의 이상향을 둘 가운데서 누가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동해 한 가운데에 줄을 매단 병을 넣어 줄이 끊어지지 않는 대결을 펼치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적인 능력의 대결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수망(水亡)굿에서 보이는 일종의 넋건지기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교통하는 행위인 점과 견주어 보면 두 행위 간의 유사성이 인정된다.10) 줄을 매단 병을 물 속에 넣어 끊어지지 않음을 과시하는 행위는 이승과 저승을 교통할 수 있는 능력의 시험은 아닐까. 『열자(列子)』에 보면 동해에는 5개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섬이 있는데, 그 가운데 병을 뜻하는 호(壺)가 있다고 한 점과 여기의 신화적 인식이 겹쳐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신화에서 병(甁)은 일반적으로 자궁(子宮)을 상징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의 태(胎)가 들어 있는 자궁으로 상징된다. 더욱이 물과 관련하여서는 여성적 원리의 함축적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를 문화적으로 해석하여 어로단계의 표현으로 보아도 해석은 자연스럽다.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11)에 의하면, 물고기가 그려진 원시적 물병은 뱀을 표상하는데, 여기에는 물고기를 다량으로 포획하려는 제의적 의미가 내재해 있다. 많은 물고기가 들어 있는 물병은 곧 여성의 상징으로서 자궁의 의미와 연결되어 어로 생산력의 증대를 기원하는 제의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륵님은 수렵이나 채집, 어로 따위와 같은 농경 이전의 시대를 상징하고 석가님은 농경시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석가님이 내밀어서(승복하지 않아서),

또 내기 시행 한번 더하자.

성천강 여름에 강을 붙이겠느냐.

미륵님은 동지채를 올리고, 석가님은 입춘채를 올려서,

미륵님은 강이 맞붙고, 석가님이 져서.



두 번째는 미륵님과 석가님이 여름철에 성천강이라는 강에서 강물을 얼어붙게 하는 능력을 겨루는 시합이다. 미륵님은 동지채를 올리고 석가님은 입춘채를 올렸다. 동지채니 입춘채니 하는 것은 아마도 동지의 기운과 입춘의 기운을 담은 일종의 문서를 말하는 듯하다. 어떤 의미를 지닌 시합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몽골의 창세신화에서 유사한 내용이 전승되고 있어서 그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로 강을 얼게 하고 녹게 하는 과정은 사계절의 순환을 말하는 것이다. 석가님은 입춘채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하지만 입춘채는 언 강을 녹이는 데에 소용되는 것이지 얼게 하는 데에 소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춘채는 언 강을 녹여 농사일을 시작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므로 석가님은 농경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능력을 가졌다고 이해할 수 있다. 미륵님과 석가님은 분명하게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신으로 등장한다. 석가님의 농경적 면모는 마지막 대결인 모란꽃 피우기 시합에서도 확인된다. 여하튼 두 번의 대결에서 미륵님이 이겼다. 그러나 석가님은 승복하지 않고 마지막 시합을 제안했다.



석가님이, 또 한 번 더하지.

너와 나와 한 방에서 누워서,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오, 너 무릎에 올라오면 너 세월이라.

석가는 도적심사를 먹고 반잠 자고, 미륵님은 찬 잠을 잤다.12)

미륵님 무릎위에, 모란꽃이 피어올라서,

석가가 중등사리로 꺾어다가, 자기 무릎에 꽂았다.

일어나서, 축축하고 더러운 이 석가야,

내 무릎에 꽃이 피었음을, 너 무릎에 꺾어 꽂았으니,

꽃이 피어 열흘이 못가고, 심어 십년이 못가리라.



왜 하필이면 무릎에 모란꽃을 피울까? 무릎은 보편적으로 사물을 생성하는 힘, 활력과 강인함을 의미하는 신화소(神話素)다. 자식을 무릎에 앉히는 것은 부권을 뜻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진정한 보살핌을 의미하기도 한다. '슬하(膝下)'라고 하는 용어 역시 같은 뜻으로 사용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슬하의 자식이란 친자(親子)의 확인이면서 양육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릎은 남성의 권위와 여성의 생산력을 포괄하고 있는 신화적 상징인 셈이다. 사물을 생성하는 힘의 원천이 무릎에 있다고 인식하면 무릎에서 꽃을 피우는 행위 자체가 이해될 수 있다.



모란꽃은 어떤 의미인가? 창세의 내력을 노래하는 다른 자료를 보면, 그저 꽃이라 하거나 불교와 관련된 연꽃이 등장하기도 하고, 배꼽에 피운 꽃이라 하여 배꽃이라 하는 것도 있으나 이는 후대에 변모된 것이며, 본래는 신화적 성격을 함축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모란꽃은 양(陽)에 속하는 몇 안 되는 꽃 가운데 하나로서 남성적 자질이나 행복을 상징하며, 꿀벌 이외에는 범접하는 곤충이 없기 때문에 황제의 꽃으로도 인식된다. 실제로 꿀벌만이 날아드는 꽃이고 꿀벌은 남성을, 나비는 대체로 여성을 의미하므로 모란꽃은 양의 정기만이 가득한 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창세가」에서 남녀 인간 중 남자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 즉 태양의 정기를 받은 금벌레가 금쟁반에 떨어져 남자가 되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면, 미륵은 태양신적 성격을 간직한 신으로 이해할 여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태양의 원리를 구현하여 자연의 상태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양상을 어느 신이 더 온전하게 구현하는가 하는 것이 모란꽃 피우기 시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잠을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운다는 행위는 또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잠을 자면서 꽃을 피우는 행위는 인위적인 경작이나 노동 없이 결과물을 얻게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인체의 가장 단단한 부위인 무릎에서 꽃을 피운다는 것은, 식물이 잘 생장할 수 있는 터를 골라 경작하는 농경의 원리를 부정하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생겨나 생장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석가의 행위는 대조적이다. 잠을 자는 내기를 하면서도 선잠을 자며 미륵의 무릎에 피어 있는 모란꽃을 자기에게로 옮겨온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 생장한 식물을 이식하여 인위적인 경작을 통해 식물을 취하는 농경생활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식물이 저절로 생장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필요한 때에 그것을 이식·경작하여 수확에 이르는 농경생활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위적인 농경은 수렵과 채집의 단계 또는 자연 상태로 자라난 목초를 가축의 먹이로 이용하는 유목적 생활 방식에서 보자면, 일종의 속임수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미륵님과 석가님은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이상한 시합을 통해 우열을 가렸다. 석가님은 부당한 방법으로 인간 세상을 차지했다. 미륵님은 능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인정했으니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 연유가 무엇인가? 미륵님이 성화에 못 이겨 인간 세상을 내어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륵님이 석가의 나머지 성화를 받기 싫어, 석가에게 세월을 주기로 마련하고(작정하고),

축축하고 더러운 석가야, 너 세월이 될라치면,

문쩌귀마다 - 집집마다 - 솟대 서고, 너 세월이 될라치면,

가문(家門)마다 기생(妓生) 나고, 가문마다 과부 나고, 가문마다 무당 나고,

가문마다 역적(逆賊) 나고, 가문마다 백정(白丁) 나고, 너 세월이 될라치면,

합둘13)이 치들이14) 나고, 너 세월이 될라치면, 三千 중에 일천거사(一千居士) 나느니라.

세월이 그런즉 말세(末世)가 된다.


여기서 기생이니 과부니 무당이니 역적이니 백정이니 하는 따위는 인간세상에 죄악이 만연하게 됨을 뜻한다. 인간은 본래 선하고 정직한데 신이 부정한 까닭에 인간세상에 죄악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원죄는 부정한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이다. 이제 미륵님은 사라졌고 인간세상은 마침내 석가님의 차지가 되었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창세의 주역신인 미륵님의 신적인 성격에 관하여 포괄적으로 검토해 보자.


「창세가」의 내용에 제시된 사항들을 우선 정리하고 이들을 연계시켜 그 신적인 성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천지를 분리시키는 데 활용한 구리기둥은 태양을 상징한다. 한국의 창세신화와 유사한 몽골의 신화에 구리(銅)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륵님은 거인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석가님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양상들이 태양·남성·유목·채집·어로 등과 관련된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부당한 방식으로 승리한 석가님이 인간 세상을 맡아 다스리는 신으로 좌정(坐定)한 양상을 통해 창세신화의 특징 하나를 생각해 보자.


부당한 방식이라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승리한 신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다는 인식에서, 우리는 윤리적·도덕적 준거보다는 최종적인 승리의 쟁취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창세신화와 같은 아주 오랜 옛날의 신화에서는, 두 신의 대결 혹은 두 영웅 사이의 대결에서 누가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는지가 중요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윤리·도덕적 준거가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는 신화는 다분히 보편적 윤리의식을 앞세운 중세적 신화에서나 유효한 것이다.



3. 태양을 남성에 빗대고 여성을 달에 빗대는 「창세가」의 발상과 다른 사례를 찾아 비교·대조해보자. 태양을 여성에, 달을 남성에 빗대는 다른 설화 자료가 있으면 함께 생각해보고 그 연유에 관해서 추론해 보자.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누이가 태양이 되고, 남동생이 달이 되는 양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창세가」는 신화이고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민담적 성격을 지닌 채 전승되므로 둘 사이의 차이점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창세가」를 비롯한 신화적 인식에서는 천상에서 태양과 달의 정기를 받은 존재가 인간세상으로 하강하는 반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같은 민담적 인식에서는 인간세상의 존재가 특별한 계기에 의하여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고 함으로써 상반되는 인식을 드러낸다. 신화는 신성한 의식을 담아내야 하므로 천상의 해와 달을 통해 인간세상에 신성한 혈통을 강조하는 반면, 민담에서는 인간세상의 삶의 양상을 극복하려는 소박한 의식이 작용하여 천상으로 올라가려는 의식을 보여준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 손진태, 향토문화사, 1930.


각주 1)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7억 년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다. 「창세가」의 미륵은 우선 무속신앙에서 불교의 신을 받아들인 결과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2) 박봉춘의 노래는 적송지성과 추엽융이 지은 『조선무속의 연구(上)』(조선총독부, 1937)에 '천지왕본풀이'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3) 제석궁은 천상계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4) 명도궁(明圖宮)은 저승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5) 경기도 오산의 이종만의 노래. '시루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시루말은 시루성신 증성신(甑聖神)을 제사하는 일종의 도사(禱祠)이다. 시루에 찐 떡을 시루째 신전에 바치는데, 시루에 머무르는 신을 시루성신이라 한다. 「시루말」 역시 적송지성과 추엽융이 지은 『조선무속의 연구(上)』(조선총독부, 1937)에 실려 있다.


6)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에서 나온 『풍속무음(風俗巫音)』(1994)에 필사본 「천지왕본(天地王本)」으로 전한다.


7) 구체적인 지명 확인이 어렵다. 쇠붙이를 들고 쳐서 불의 근본을 알아내었다고 하는 의미에서 보면 금정산(金頂山) 정도로 표기할 수도 있다. 중국 사천성 북쪽의 아미산(蛾眉山) 정상을 금정봉(金頂奉)이라 하는데 이 지명을 가져다 쓴 것일 수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참고로 아미산은 4대 불교 성산 가운데 하나로 보현보살(普賢菩薩)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8) 구체적 지명 확인이 어렵다. 다만 물의 근본을 찾아낸 산이라 의미로 수하산(水下山) 정도의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다.


9) 쉐더는 아바스(Avars)가 뱀(aburgu > aeara)의 음역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10) 수망굿은 물에 빠져 죽은 이의 넋을 건져 내어 저승으로 천도하는 굿이다. 넋병을 바다에 넣어 망자의 넋을 건져내는 의식을 넋건지기라 한다.


11) 프랑스의 인류학자. 문화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구조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문화체계를 분석하는 구조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주요 저서로 『슬픈열대(Tristes tropiques)』(1955), 『구조인류학(Anthropologie structurale)(1958) 등이 있다.


12) 반잠은 가수면(假睡眠) 상태를 말한다. 반쯤 드는 잠 혹은 잠을 자는 체 하다는 뜻이다. 찬 잠은 완전히 잠을 자다 곧, 한잠을 잤다는 의미이다.


13) 의미를 알 수 없으나 문맥상 "아랫사람으로 윗사람에게 영합하는 자" 정도로 이해된다.


14) 문맥상 "아랫사람으로 윗사람에게 반역하는 자" 정도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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