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의 원형 지구라트
타나토노트
2012-11-14 17:42:29 │ 조회 1579

 

지구라트[ziggurat]

  

 

 산꼭대기나 고지(高地)를 뜻하는 아시리아어 지쿠라투(ziqquratu)에서 유래. 지구라트는 다른 말로 rn성탑(聖塔), 단탑(段塔)이라고도 한다. 고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서 진흙 벽돌로 세운 피라미드형 탑으로 신전의 기부(基部)를 rn이룬다. 하늘에 있는 신들과 지상의 인간들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초기부터 지표보다 높게 설치하였으며 후대에 올수록 차차 높아지게 rn되었다. 정상부는 '하얀 집'이라 하여 신상을 모셔 놓은 성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고대에서 이와 필적할 규모의 건축물은 이집트의rn 피라미드밖에 없는데, 피라미드가 직선상의 통로를 갖는데 비해 지구라트는 지그재그의 곡절 통로를 가지고 있다. 수메르 시대 초기에rn 처음 신전의 기단(基壇)에서 발달하였는데 계단식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지구라트를 휘돌면서 점점 올라가는 형식도 rn있다.

 

이렇게 오르게 되면 길이 그대로 눈에 드러난다. 원래는 각 도시에 있었으나 거의가 무너져 버려 원형을 간직하지 못하고 rn있다. 오늘날까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우르의 지구라트인데, 저변(底邊)이 62.5×43m이다. 특히 구약성경에 나오는 rn<바벨탑>은 바빌론의 지구라트를 가리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및 엘람(이란 서부)의rn 고대도시에 설치된 층계 모양의 성탑(聖塔). 신전(神殿)에 부속되어 있다. 지구라트의 정의나 성립시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rn 있는데, 에리두(Eridu) 11층 이후의 신전, 우루크(Uruk)의 <아누의 지구라트>, 혹은 하파제의 <타원 신전> 등, rnBC 3000년대 전반 이전의 기단이 있는 신전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으며, 우르(Ur) 제 3 왕조의 수립자인 rn우르남무(Ur-Nammu)의 지구라트에서 기본적인 형을 거의 갖춘 것으로 보인다. 우르남무는 rn우르·우르크·니푸르(Nippur)·에리두에 지구라트를 세웠는데 이 중 유명한 우르의 지구라트는 3층의 기단 윗부분에 주신(主神) rn난다에게 봉헌한 신전을 배치하고 정면과 양 측면에는 계단을 배치한 구조이다. 이러한 형태의 지구라트는 카시트시대(BC 2000년대rn 후반) 두르쿠리갈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기단 위의 신전과 같은 신을 모시는 신전이 산기슭에 세워져 있다. 이것은 신이rn 있는 곳(높은 곳의 신전)과 인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낮은 곳의 신전)라는 종교개념의 확립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뒤의 rn지구라트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리아 시대(BC 1365∼BC 609), 북메소포타미아의 각 도시에 조영(造營)된 rn지구라트에는 계단 대신에 경사로(傾斜路)가 설치되었다. 6개의 신전에 부속되어 있는 코르사바드의 지구라트는 4층만 남아 있는데 그rn 당시는 7층으로 채색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벨탑>으로 유명한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신바빌로니아시대(BC 625∼BC 538)에 rn속한다. 주신 마르두크의 신전에 이르려면 계단과 경사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엘람에서도 초가잔빌에 BC 13세기에 5층의 기단이 있는 인슈시나크신(神)의 지구라트가 건조되었다. 이와 같은 rn지구라트를 축조할 때에는 속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겉마무리 쌓기에는 구운 벽돌을 쓰고, 역청(瀝靑) 등을 모르타르로 rn사용하였다. 또한 표면의 채색은 채유(彩釉) 벽돌로 하였다. 한편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에 있어서 <산>의 개념과 결부되어 고대의rn 종교관·우주관의 복원(復元)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그 명칭에 대한 고찰은 고고학적 자료와 함께 많은 것을 시사해 rn주는데, 바빌론 지구라트의 명칭인 에테멘안키(-temen-an-ki;하늘과 땅의 초석인 집)는 그 한 예이다. 또한 rn수메르어(語)에서 지구라트를 나타내는 말은 에우니르(-u-nir;놀라운 집)이며, 구데아(Gudea)의 비문에 등장하는 rn에파에우브이 민나(-pa--ub-iminna;지구라트, 즉 7지방의 신전)도 7층의 지구라트를 상기시키는 호칭이다.

출처 :엠파스 백과사전


The ziggurat (and temple?) of Ur-Nammu

Thisrn ziggurat was erected to the moon god Nanna. It was built by Ur-Nammu atrn Ur around 2113-2096 B.C. It was composed of three stages. It is not rnclear whether there was a temple at the top. The remains of the zigguratrn probably stood over an existing structure going back to the early rndynastic period, and restored by the Neo-Babylonian king Nabonidus rn(556-539 B.C.). It is the most preserved of all ziggurats in Mesopotamiarn and has been partially reconstructed reaching a hight of 11 m. It stoodrn within a rectangular court 62.5 m x 43 m. at the base. Its outer faces rnare of baked brick, are inclined to a pronounced batter and have rnregularly spaced, flat buttresses. These outer faces encase the solid rncore of mudbricks. Access to the ziggurat was through three converging rnramps from where a central stairway continued to the second stage. The rnshape of the staircase leading to the third stage is unclear.

 

 

 

Ur, Ziggurat c.2500BC

 

 

Ziggurat, from the air

 

 

Ur: Excavation of the Ziggurat of Ur-Nammu

 

 

  

Ur: Ziggurat of Ur-Nammu from the front

 

 

Ur: Ziggurat of Ur-Nammu from the rear (note the drainage slits)

 

  

Ur. The Staircases of the Ur-Nammu Ziggurat

 

 

 

 

Reconstruction

 

 


 

 

 

 

Ground plan

 

 

Construction Brickwork 

 

 

 

White Temple
Thisrn temple was erected at Warka or Uruk (Sumer), probably about 300 B.C.It rnstood on a brick terrace, formed by the construction of successive rnbuildings on the site (the Ziggurat). The top was reached by a rnstaircase. The temple measured 22 x 17 meters (73 x 57 feet). Access to rnthe temple was through three doors, the main located at its southern rnside.

 

 

 

 

 

 

Re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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