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사학자 박성수 박사의 타계를 애도하며
피쉬
2016-03-08 13:10:16 │ 조회 972

                                                            민족사학자 박성수 박사의 타계를 애도하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민족사학은 식민사학과 대립하면서 행촌 이암-일십당 이맥-해학 이기-운초 계연수-한암당 이유립-위당 정인보-최태영으로 이어져 왔다.
   최근 대한민국 민족사학을 이끌어온 원로 사학자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2016년 2월 27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전북 무주출생으로 서울대 사밤대학 역사교육과, 고려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문과대 부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다. 정년 이후에도 환국-배달국-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상고사를 규명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세계환단학회 회장과 (사)대한사랑 이사장과 삼균학회 회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해 왔다.
   
    박성수 교수는 서양사학으로 출발했지만 연구의 방향을 돌려 한국의 시원역사와 독립운동사 등 민족의 뿌리를 밝히고 민족정신을 정립(正立)하는 데 혼신을 다해 민족사학계의 거목으로 자리매겨져 왔다.
   세계환단학회가 그의 노력에 힘입어 2014년에 창설되었고, 인류시원의 역사가 담긴 환국의 땅(바이칼 호수)이 있는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에서 뜻깊은 국제학술대회가 성사될 수 있었다. 2016년 2월 20일 모스크바 코로스톤 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한반도와 유라시아 문명의 대화'를 주제로 러시아의 내로라하는 한국학 학자들과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사상 처음 함께 해 한민족 상고사와 유라시아 문명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특히 환국과 배달,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9천년 역사의 한국상고사가 일제의 조작으로 신화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20세기이후 중국 내몽골과 요서 지역 일대에서 발굴된 홍산문화를 한러학자들이 조명하고 "고조선이 조선 사람들에 의해 스스로 건국되었다", "발해는 육해상로를 갖춘 대국이었다"는 연구논문을 러시아 학자들이 발표한 것은 고무적인 성과였다.
   박성수 회장은 개회사에서 "역사 속에는 민족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혼이 죽은 역사, 고금이 절단된 역사는 민족사가 아니다. 사대주의와 일제식민사관으로 끊긴 민족사의 맥을 다시 잇고 민족사학을 재야에서 강단으로 끌어올려 우리의 위대한 상고사를 재건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같이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한민족의 상고사에 관한 열정을 보여 주어 참석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의 특별한 인연과 모스크바 학술대회의 감회를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후 고종황제가 충정공 민영환을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에 보내 도와줄 것을 간청하자 러시아는 육군과 해군함을 보냈다. 절대 질 수 없는 막강한 발트 함대를 보냈지만 영국의 방해로 너무 먼 길을 돌아오고 기계 고장까지 일으키는 불운으로 일본에 패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멀어졌다"고 회고했다.
   모스코바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한 모스크바프레스의 김원일 박사(모스크바 국립대학)는 "한국 상고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환국의 땅을 품고 있는 러시아에서 역사적인 국제 학술대회가 열린 것을 너무나 기뻐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더욱 의미있는 학술교류를 통해 고인의 유지를 받들면 좋겠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박성수 교수는 국학원 ? 국학연구원 ? 세계환단학회 ? 한배달이 주최하는 학술세미나에서 논문을 여러 차례 발표하고, 상생방송에서 역사특강을 여러 차례 하여 민족사학도들에게는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강단사학자들에게는 사이비 학자로 무시되거나 폄하되기도 했다.
   박성수 교수는 강단사학자이면서도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민족사 연구에 헌신하며 1983년에『환단고기』배달의숙본을 발간하여 세상에 알린 한암당(寒闇當) 이유립(李裕笠, 1907~1986) 선생을 ‘국사의 아버지’라고 추앙할 정도로『환단고기(桓檀古記)』를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는 증산도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필자는 재야민족사학자로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박사과정에 재학하고 있을 때에 국학연구원이 개최하는 학술세미나에 여러 차례 참석해 박성수 교수가 학술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자주 뵐 수가 있었고, 상생방송에서 박성수 교수가 역사특강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는가 하면, 레포트와 학술논문를 작성할 때에 박성수 교수의 저서들을 많이 참고하여, 박성수 교수의 타계 소식은 남다른 감회와 슬픔에 적게 하고 있다. 게다가 식민사학에 비해 민족사학이 열세에 있어 민족사학자를 단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할 필요성이 있는 이때에 타계하여 민족사학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박 교수의 주요 저서로는『독립운동사 연구』,『역사학개론』,『한국근대민족운동사』,『한국 근대사의 재인식』, 『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정인보의 조선사 연구』,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한국인의 역사정신』,『단군문화기행』,『한국독립운동사론』,『민족사의 맥을 찾아서』등이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지난 2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계환단학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뒤 지병이 악화돼 모스크바 병원에 입원했고 끝내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우리 상고사와 특별한 인연을 갖는 러시아 연방의 수도에서 민족사학계의 큰별이 진 것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은경씨, 아들 장우(사업)·장균(사업)씨, 딸 지현(진주시청 근무)·지희씨, 사위 박윤배(경상대 교수)·박기태(SCA 사장)씨가 있다.
   장례는 민족사회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 02-2258-5940)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4일 오전 5시다. 장지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천주교 길음동교회 묘역이다.
   박성수 교수가 이승에서의 모든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천국에서 편안하게 영면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