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의 권위자인 우에다 마가아키 박사의 명복을 빌며
냥이씨
2016-03-14 16:54:27 │ 조회 943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의 권위자인 교토대 우에다 마사아키 명예교수의 명복을 빌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辛相龜

   일본 고대사 연구의 1인자로 꼽혀온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京都)대 명예교수가 근래 암 치료를 받아오다가 지난 2016년 3월 13일 교토부(京都府)의 자택에서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고인은 일본 근대사학계의 태두로 아키히토 일왕의 백제학 스승이다. 그는 한일 고대사 연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고 우에다 교수는 1925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1950년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교토공립고교를 거쳐 교토대 사학과에 재직하며 조교수와 교수를 거쳐 1991년부터 오사카여자대(현 오사카부립대) 학장(한국의 총장 개념) ,  아시아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일본 고대사 및 한·일 고대 교류사 연구에 일생을 바쳐왔다. 특히 그는 80세 이상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연구활동과 강연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고, 일본왕실 및 왕족 족보인 <신찬성씨록>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는가 하면, 일본의 수많은 신들 중 나라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는 일본 불교 성지인 히에이산((比叡山) 미이데라(三井寺 : 온조사의 옛 이름) 신라선신당에 봉안된 신라명신(新羅明神)이 유일하다고 말해 한국과 일본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라명신은 지증대사(智証大師) 엔친(圓珍)이 당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배안에 나타나 엔친을 수호해 주고, 엔친이 온조지를 창건할 때 다시 나타나 그 사업을 지도해 준 신라신을 말한다. 신라선신당에 엔친이 봉안한 신라명신상은 노송나무로 조각되었으며, 높이가 78cm이다.
   고 우에다 교수는 그동안 고대 한일관계 연구를 통해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의 글을 분석해 일본서기가 이야기하듯 ‘백제왕이 일본천황에게 헌상한 것’이 아니라 ‘백제왕자가 일본왕에게 내린 것’임을 밝혔다. 또한 1965년『귀화인』이란 저서에서 “일본 간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왕족 화신립”이란 글을 썼다가 우익단체로부터 ‘국적(國賊)’이라면서 교토대를 그만 두라는 협박장을 네 번이나 받은 적이 있다. 지난 2001년 12월 일본 천황이 “내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8년 11월 아키히토 일왕과 만나 2시간 동안 고대백제(일본천왕이 백제부흥을 위해 군사파견한 백천강 전투, 무령왕, 성왕)관련 대담을 했다.
   2010년 10월 3일 한국을 방문해 2010년 10월 4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 제1회 한일천손문화학술대회에 참석했다. ‘단군 개국신화는 일본 개국신화의 모태(母胎)’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총장 이승헌)과 (사)국학원(원장직대 장영주) 공동주최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한일천손문화연구소(소장 홍윤기)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그는 <한일친선과 천손문화>라는 논문을 통해 단군신화와 가야신화가 일본 천손 강림 신화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일본 왕실궁중 신악(宮中神樂)인 어신악 중 한신(韓神)과 신라어 “오게 아지매(阿知女) 오오오오 오게” 등을 통해 일본 황도신도가들의 역사왜곡을 명확하게 밝혔다.   
   고인은 태평양전쟁 중 학도병으로 동원돼 도쿄의 조선소에서 공습으로 친구를 잃은 뒤 '천황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을 계기로 고대사 연구에 입문,『일본고대국가론구(論究)』,『일본신화』,『고대 전승사(傳承史)의 연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시각으로 일본 고대사를 분석했으며, 고대 조선사 연구 등에서도 굵직한 이정표를 남겼다.  고인은 생전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대해 써온 '귀화인'이라는 용어가 '일본 중심적'이라고 지적하고, '도래(渡來)인'이라는 용어로 바꿔 정착시키기도 했다.  강단 안팎에서 "전쟁이야말로 최대의 인권 침해"라고 역설하고, 재일조선인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일본 제국주의 한국 침략 등은 용서할 수 없는 불행한 역사이고 어두운 ‘그림자의 역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6-7세기 한반도에서 건너와 일본 아스카 문화를 이끈 역할은 ‘빛의 역사’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민간 교류의 확대를 통해 푸는 지혜가 필요하고, 일본 속의 백제 탐사와 같은 과거의 한·일 역사를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교류의 틀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9년 한일 고대사 연구, 고려미술관 개설, 다문화 공생사회 실현 노력 등의 공로가 인정돼 한국 정부가 민간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수교훈장 숭례장(崇禮章)’을 받은 바 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박사과정 재학시절 홍윤기 교수로부터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京都)대 명예교수의 눈부신 연구업적을 여러 차례 전해듣고 존경심을 가진 적이 있어,그의 타계 소식은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
   한국의 재야사학자로서 고인의  한일 고대사 연구 업적을 다시 한 번 높이 평가하며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참고문헌>
  1.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우리 역사, 세계와 통하다』, 가디언, 2011.4.7.
  2. "신라명신(新羅明神)",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3.14.
  3. 이용, “우에다 마사아키 日교토대 명예교수 인터뷰”, 대전일보, 2009.9.21일자. 5면.
  4. 강현주, “칠지도의 진실 밝힌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 방한(訪韓) - 10월 4일 국학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개천학술제 초빙”, 코리안스피릿, 2010.9.28일자.
  5. 조준형, “한일고대사 연구에 족적 남긴 日역사학계 거목 우에다 별세”, 드림위즈뉴스, 2016.3.14일자.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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