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 중 하나로, 서양의 경우 산업혁명 시기에 크게 발전해 오늘날 과학 및 산업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도 역사 상 문화적인 전성기가 있었을 때 수학이 큰 역할을 수행했는데,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인 첨성대와 석굴암·무령왕릉,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철학적이고 수학적인 문자인 한글 등 모두 든든한 수학적 기반 위에 탄생한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전성기가 가능했던 것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 수학이라는 인식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국가제도를 바로잡고 굳건한 통치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수학의 기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세종대왕 시대에 한글 및 다양한 발명품들이 개발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현대에 들어 수학적인 문제 상황이나 학습과 관련된 상황을 꺼리는 반응을 일컬어 수학 기피 현상이라고 하는데, 많은 수학적 유산을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하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해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같은 국제적 권위를 가진 수학경시대회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는 성과 이면에는 수학 기피, 수학 불안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배우기 어렵다’, ‘자신이 없다’, ‘암기하기 어렵다’, ‘필요 없는 과목이다’라는 인식은 교육과정에서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인데, 자세히 말할 수 없어도 입시를 위한 진도 위주의 교육 방식에서 탈피해 학습자 중심의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충분한 이해를 통해 수 학적인 표현이 자연스러워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수학은 자연발생 했을까?
수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고대 문명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문명의 필요에 따라 수학이 자연적으로 발생했음이 분명하다. 지중해 근처에서 발전한 3대 문명을 생각해보자. 지금의 이라크 근처에서 발전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 하나인데 바빌로니아 문명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국제 교역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상업 수학이 발전했는데 물물교환을 가능하게 하기위한 수학이었다. 또 다른 문명인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범람에 대응하고 피라미드를 짓는 과정에서 측량의 필요에 따라 기하학을 발전시켰다. 나머지 하나가 고대 그리스 문명이다. 시기적으로는 조금 늦었는데 수학의 발전 수준은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리스 문명은 실생활의 필요에 따라 수학을 발전시킨 게 아니라, 지극히 추상적인 사유에 기반을 두어서 수학을 발전시켰다. 피타고라스ㆍ플라톤ㆍ유클리드 같은 이들은 수학자이자 철학자였고, 당시 이 두 직업은 구별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스 문명은 왜 이렇게 달랐을까?
하지만 조금 더 넓게 생각해 보자. 상거래를 위해 또는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수학을 발전시킨 것은 문명의 필요에 의한 것인데, 우주의 질서에 대한 호기심과 고민, 그리고 사유도 문명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방식은 달랐지만 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수학은 문명의 질문에 답하며 자연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대문명의 질문에 답하는 수학
이제 우리가 사는 21세기에서 현대 문명은 어떤 질문을 하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인류는 어떤 질문에 답해야 할까?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모델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그 중 가장 중요해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검색 사이트에서 어떤 단어나 표현을 가지고 검색을 해보면, 보통은 앞쪽 페이지에 나오는 검색결과가 우리가 원했던 결과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통상은 뒤쪽 페이지까지 갈 필요가 없다. 검색 사이트는 무엇을 근거로 검색결과를 서열화해서 앞쪽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배치하고 보여주는 걸까? 이것은 복합적이고 섬세한 수학적인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것으로, 검색결과를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마술과도 같은 답을 한 것이다.
영상통화는 어떻게 하는 걸까? 영상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보내면 신호가 벽에도 부딪치고 공기의 온도차도 겪고 우여곡절이 많아서 변질된 신호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곤 하는데 말이다. 변질된 신호에서 오류를 찾고 자동으로 교정해서 원래의 영상신호를 복원해내는 수학이론이 깔끔한 영상통화를 가능하게 한다. 코딩 이론이라는 수학 이론이다.
요즘 금융거래에서 해킹 때문에 물의가 자주 일어난다. 인터넷 상거래에서 본인인증의 문제는 아직도 골칫거리다. 이러한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암호론이라는 수학 이론이다. 아직도 수학자들은 암호론을 발전시키며 해커들과 치열하게 전쟁 중이다.
이렇게 수학은 문명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출현한 이러한 질문에 근사하게 답하곤 했다. 현대 이전에는 예술이나 철학에 관련된 우아한 질문이 많았다면, 21세기에는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 질문의 폭과 종류가 훨씬 커지고 있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능력을 쌓아가야 한다.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후세들을 준비시킬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세상을 바꾸는 수학’
최근 국내 주요 대학의 입시에서 수학과가 최고의 인기 학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풀이의 반복으로 아이들이 지치고 입시와 사교육 문제의 주범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으니, 분명 의외의 상황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초래했을까?
197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는 맞춤교육이 중요했다. 기업의 실무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학교에서 충실히 배워서 취업하자마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21세기가 어떤 때인가? 사회발전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다. 이런 시대에 맞춤교육을 시키면 당장의 해당 업무에서는 능력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몇 년 안에 용도 폐기되지 않을까? 그래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상시 습득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무엇을 얼마나 배웠는가보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지식을 신속하게 습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이다. 그래서 창의적 사고와 문제풀이 능력을 교육받은 수학전공 학생들이 채용시장에서 선호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사람)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수학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수학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만 고민하다가, 정작 ‘왜’ 수학을 배우는지를 우리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지 않은 게 아닐까? 강력한 학습의 동기는 어려운 내용도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가? 이제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왜 배우는가’를 고민할 때이다.
여가시간에 수학문제를 풀며 경제정책을 고심한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나, 기존의 수학적 업적 대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수학계의 난제를 해결하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John Nash), 우리나라의 발전과 민족 계몽을 위해 수학이 꼭 필요하다며 수학 교과서를 직접 쓰기까지 했던 근대 수학의 아버지 이상설(1870~1917) 등의 경우에서 보듯이, 수학은 그 시대의 리더들이 거듭 강조한 가장 미래지향적인 학문으로써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현대 수학은 자연과학·공학 또는 사회과학과의 연계 등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활발히 협력하고 있고, 그래서 수학은 미래의 인재가 갖추어야 필수 소양이 되고 있다. 이제는 수학이 세상을 바꾸는 모습을 교육과정을 통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이다.